교직원연금법 관련 한정위헌 여부 물으려 하자
법원행정처 통해 “취소하라” 압박 후 은폐 조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재임시절 일선 법원 재판부가 내린 위헌법률심판제청 결정을 취소하게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전 대법원장이 재판에 직접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 건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 후 처음이다.
11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복수 법원관계자로부터 이러한 진술을 확보하고, 최근 A부장판사를 소환해 사실 관계를 캐물었다.
2015년 서울 일선 법원에 근무할 당시 A부장판사는 모 사립학교 교직원연금법과 관련해 공중보건의 재직기간을 법상 재직기간에 산입할 수 있는지를 놓고 헌법재판소에 한정위헌 여부를 묻는 위헌법률심판제청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특정 법 조문을 놓고 여러 해석이 가능할 때 특정한 해석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위헌 여지를 없애기 위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후 재판부는 소송당사자에게 이 같은 결정 사실을 통보했다.
하지만 검찰 조사 결과 이 사실을 알게 된 법원행정처 고위관계자가 양 전 대법원장 지시를 받아 A부장판사에게 재판부 직권으로 취소하도록 압박을 넣은 것으로 드러났다. 법원행정처는 이 과정에서 전산정보국을 동원해 내부 전산망에서 결정문이 열람되지 않도록 은폐조치까지 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당시 헌재와 갈등을 빚어온 양 전 대법원장이 한정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는 애초 재판부 결정 취지에 불만을 갖고 법원행정처를 통해 압박을 넣은 것으로 보고 있다. 헌재가 법원 제청을 받아들여 한정위헌 결정을 내리면 사법부 내에 판례로 통용되던 특정한 법률 해석이 위헌이라는 뜻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재판부가 이미 내린 결정에 대법원이 불법으로 개입, 재판 침해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12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민사소송과 법관 해외파견 등을 거래하는데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유 전 수석연구관, 그에게 기밀자료를 건넨 혐의를 받고 있는 김현석 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을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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