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시절 전국 평정한 최고 유망주
카타르 리그 이적 후 서서히 잊혀져
2014, 2018 두 차례 월드컵 참가 실패
벤투 신임 감독이 1년 여 만에 발탁
코스타리카전 환상적인 드리블 쐐기골
“말하자면 남태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같은 존재였습니다.”
남태희(27ㆍ알 두하일) 에이전시 지쎈 관계자가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다
남태희와 동갑인 1991년생들은 고교시절 ‘황금세대’로 불릴 만큼 뛰어난 유망주가 많았다.
광양제철고 지동원(아우크스부르크), 동북고 김원식(서울), 포항제철고 이용재(교토 상가)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도 울산 현대고 남태희 앞에서는 일단 한 수 접었다고 한다. ‘난세의 영웅’ 사이에서 일본 전국 시대를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처럼 남태희가 학창시절 독보적이었다는 의미다. 남태희는 2009년 프랑스 프로축구 1부 발랑시엔과 1군 계약을 했다. 한국 축구 사상 최연소 유럽 1군 계약, 1군 데뷔 기록을 그가 갖고 있다.
그러나 ‘최고 유망주’란 타이틀은 남태희에게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는 성인이 된 뒤 늘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다. 틀린 지적이라고 볼 수도 없다. 남태희는 2011년 프랑스에서 카타르 프로축구로 이적해 7년째 뛰고 있다. 그곳에서는 ‘중동의 왕자’ ‘카타르 메시’라 불리지만 여론의 관심에서는 멀어졌다. 태극마크를 달고도(A매치 52경기 7골) 썩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남태희는 신태용 전 감독이 국가대표 지휘봉을 잡았던 지난 해 10월 모코로와 평가전에 선발 출전했지만 전반 28분 만에 교체됐다. 선발 멤버가 부상도 아닌데 교체되는 건 가장 굴욕적인 일이다. 그는 이후 한 번도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다. 2014년 브라질에 이어 2018년 러시아월드컵 참가도 좌절됐다.
와신상담하던 남태희에게 파울루 벤투 신임 대표팀 감독이 다시 기회를 줬다.
그는 지난 7일 코스타리카와 평가전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1년 여 만에 A매치에 출전해 2-0 승리를 이끌었다. 했다. 전반 선제골의 물꼬를 튼 페널티킥을 얻어냈고 후반에는 질풍 같은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제친 뒤 오른발 강슛으로 그물을 갈랐다. 남태희의 A매치 득점은 2016년 11월 이후 2년 여 만이다. 경기 내내 무표정하던 벤투 감독도 남태희의 환상적인 골에 오른팔을 들며 환호했다.
남태희는 중동에서 벗어나 ‘축구의 본고장’ 유럽 무대로 다시 나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품고 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이적 시장 때마다 유럽 이적을 타진했다. 관심을 보인 구단도 꽤 있었지만 부자 구단인 알 두하일이 “우린 이적료가 필요 없다”며 남태희를 놔주지 않았다. 남태희는 알 두하일과 계약이 끝나는 내년 여름에라도 자유계약(FA) 신분으로 유럽 이적을 추진할 계획이다.
그는 코스타리카전 후 “(러시아월드컵을 보며) 나도 저기서 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털어놓은 뒤 “힘든 시기였지만 팀에서 열심히 하면 기회가 다시 올 거란 생각으로 버텼다. 다음 상대인 칠레는 더 강하니 더 많은 준비를 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한국은 11일 국제축구연맹(FIFA) 12위인 남미 강호 칠레와 두 번째 평가전을 치른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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