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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심폐소생술

입력
2018.09.0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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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폐소생술은 어느덧 우리에게 친숙한 단어가 되었다. 누구나 한 번쯤 교육을 받았거나 적어도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사람에게 심폐소생술을 해본 사람은 드물다. 심장이 멈춘 사람이 눈앞에 있어야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1년에 28만 명이 사망선고를 받는다. 그중 3만 명은 병원 밖에서 심정지로 사망한다. 얼마 전 응급실에 40대 남자가 심정지로 내원했다. 남편이 화장실에서 쓰러지자 아내는 일어날까 가만히 보고 있었다고 했다. 10분 남짓한 시간이 흘러서야 그녀는 신고했고, 대원들이 도착해 확인하자 부정맥으로 인한 심정지였다. 그는 생사의 사투 끝에 사망했다. 그 10분이 생사를 가른 셈이었다.

심정지가 오면 사람은 즉시 쓰러진다. 나는 사람이 심정지로 쓰러지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모든 행동이 갑자기 멈추고 눈의 초점이 풀린 뒤 쓰러진다. 즉각 뇌로 피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 쓰러진 사람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으면 무조건 죽는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없다.

그래서 심폐소생술이 있다. 가슴 앞쪽을 5~6 cm의 깊이로 눌러야 하는데, 실제로 해보면 생각보다 매우 깊다. 보통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이다. 이는 외부에서 심장을 물리적으로 눌러서 짜주는 행위이다. 가장 효율적으로 심폐소생술을 해도 본래 박출량의 3분의 1 정도만 유지할 수 있다. 충분한 전신 순환이 되기는 부족하지만 뇌와 심장을 일시적으로 지킬 정도는 된다.

심폐소생술을 유지하고 심정지의 원인을 교정하면 환자는 살아난다. 병원 밖 심정지의 가장 흔한 원인은 부정맥인데, 이를 교정해주는 것이 자동 제세동기, 일명 심장충격기다. 이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되면 환자는 즉시 의식까지 회복할 수 있다. 내 눈앞에서 부정맥으로 인한 심정지로 쓰러진 사람은 거의 다 살아났다. 그곳이 병원이었고 내가 의사라는 이유만이었다. 하지만 심정지 환자 대부분은 죽음으로 향한다. 3~4분이면 뇌손상이 시작되고 10분이면 뇌세포가 전부 죽는다. 심폐소생술이 1분 늦을 때마다 생존확률은 5~7% 정도 감소하며, 20분 정도면 생존 확률이 거의 없다.

2006년 우리나라의 심정지 생존율은 2.3%였다. 당시 집계된 병원 밖 심정지 환자 2만 명 중 460명만 살았다. 이 수치가 2016년에는 7.6%로 올랐다. 당해 집계된 병원 밖 심정지 환자 3만 명 중에서 2280명이 살아난 것이다. 단순 수치로 한 해 1820명이 더 목숨을 건졌다. 목격자가 심폐소생술을 하면 환자가 살아날 확률이 3~6배가 증가하는데, 이 비율이 3.1%에서 16.8%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1820명이 더 살아난 이유는 우리에게 심폐소생술이 친숙한 단어가 되었기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100명만 사망해도 우리는 국가적 재난이라고 부른다. 그러니 심폐소생술로 우리는 매달 하나의 국가적 재난을 막아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갈 길은 남아있다. 선진국의 심정지 생존율은 11~12% 정도이고, 목격자 심폐소생술 확률은 30%나 된다. 우리나라와 아직 생존율이 4~5%가 차이가 난다. 이는 우리가 아직도 많은 생명을 놓치고 있으며, 지금까지 온 길만큼 더 가야 한다는 뜻이다.

한 해에 3만 명이 심정지로 길에서 쓰러진다. 당신은 이 사람들을 인생에서 한 번 정도 마주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마주한다면 그건 그 사람의 인생이 당신에게 온전히 걸려 있는 매우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다. 악의만 없다면 심폐소생술의 민형사상 책임은 없다. 그를 떠나 두렵거나 잘 모른다는 이유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나 같은 의사가 그 현장에 다 있을 수 없다. 대신 당신들이 그 자리에서 그 사람의 생명을 지켜주어야 한다. 심폐소생술, 배워서, 해야 한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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