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ㆍ리비아와 비교 안될 만큼
북한 원자로 등 핵시설 방대하지만
“핵물질ㆍ무기에 검증ㆍ폐기 초점 땐
그렇게 긴 시간 걸리지 않아”
“ICBM 아무리 많이 보유해도
핵물질만 들어내면 위협 사라져”
지난 5일 방북한 대북 특사단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핵화 희망 시한으로 언급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임기 끝은 2021년 1월이다. 2년 남짓 남았다. 핵 물리학자 지그프리드 헤커 미 스탠퍼드대 교수가 비핵화 완료까지 무려 15년이 걸린다고 예상한 것과는 차이가 크다. 그러나 당장 대미 협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빈말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 중론이다. 북한 핵을 깡그리 없애겠다는 집념 대신 위협 먼저 해소한다는 실용적 목적에 미국이 집중하고, 북한이 딴 마음을 품지 않으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신뢰가 토대라는 조언이다.
7일 정부ㆍ학계 등에 따르면 1990년대, 2000년대 초반 1ㆍ2차 북핵 위기를 지나면서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신고한 기본 핵시설은 17개다. 그러나 영변 핵단지에 지어진 건물만 400개에 가깝다. 이미 여러 차례 핵실험을 거친 만큼 북한은 핵물질뿐 아니라 50개 안팎의 핵무기까지 보유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안준호 전 IAEA 선임 핵사찰관은 5월 본보 인터뷰에서 “(플루토늄) 재처리, (우라늄) 농축, 원자로, 실험실 등 북한 핵시설은 과거 (비핵화한) 남아프리카공화국ㆍ리비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다”고 한 바 있다. 안진수 전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책임연구원은 “핵무기 7개, 핵시설 1곳뿐이던 남아공도 검증에 3년 넘게 걸린 걸로 안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을 단축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핵심만 골라 압축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0~20년 걸리는 방사화학실험실의 제염(除染)이나 핵시설의 완전 폐기까지 다 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지만 검증ㆍ폐기의 초점을 핵물질과 핵무기에만 맞추면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콘크리트를 부어 넣으면 오래 걸려도 1년 뒤에는 시설을 완전히 영구 불능화할 수 있다고 한다.
6ㆍ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제재를 해제할 수 있는 시기로 ‘비핵화 과정 20% 완료’ 시점을 제시했던 건 이를 염두에 뒀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완전한 비핵화에 10~15년이 걸리는 걸로 알려져 있지만, 미 본토나 주변국을 향한 위협을 해소하는 데에는 약 20%의 핵심적 비핵화면 충분하고 여기에 걸리는 기간이 2년가량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라고 했다.
이에 김 위원장이 2년여 뒤 가능하다고 한 비핵화 상태가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 거론한 20% 비핵화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아무리 많이 갖고 있어도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HEU) 등 핵물질이 없다면 별 소용이 없어지는 게 사실”이라며 “핵물질만 철저히 확인해 들어내면 북한 핵 위협이 당분간 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핵시설 역시 다 부수지 않고도 플루토늄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라인 시설만 완벽히 폐기할 경우 추가 핵물질 생산 차단이 가능하다”며 “이들 시설이 핵 사이클(생산주기)의 20% 정도”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북한이 핵시설을 은닉하거나 핵물질 보유량을 속이려 할 때다. 안진수 전 연구원은 “우라늄 농축 시설은 면적이 크지 않은 데다 소모하는 전력량도 적어 존재 자체를 탐지하기가 어렵고, 원심분리기 수나 가동률을 추산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미 생산된 HEU 양도 나중에 알 길이 막막하다”고 했다.
때문에 조기 비핵화 관건은 기술적 난도(難度)보다는 결국 신고하고 검증하는 북미 양측의 정치적 타협 의지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방북 특사단에게 비핵화 진정성을 거듭 강조한 김 위원장이 더불어 재차 환기한 조건이 미국의 상응 조치다. 미 프린스턴대 소속 알렉산더 글레이저 박사팀은 이날 과학저널 ‘사이언스’의 ‘정책포럼’에서 3단계 비핵화 접근법을 제안하면서 비핵화 과정의 성공 여부는 북미 간 상호 신뢰가 결정할 것이라며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정치적 유연성이 양측에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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