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희귀 직종 20년 활동
대규모 아파트까지 경험
서울시 좋은빛상 받아
#2
“건축주 화려함 욕심에
너무 밝은 건물 생겨
사람 편한 디자인 필요”
덕수궁 돌담길, 서울시의회, 홍대 상상마당. 완공한지 길게는 수백년, 짧게는 십수년 된 이 건축물들의 조명 디자이너는 신기하게도 동일 인물이다. 돌담길은 2016년 10월, 시의회는 같은 해 11월, 상상마당은 2017년 2월 리모델링했는데 경관 조명 설계를 모두 한 명에게 의뢰했기 때문. ㈜루미노의 하선덕(48)대표다. 조명 디자이너로 나선지 올해로 꼭 20년째인데 아직 국내에는 ‘희귀 직종’이라 병원(연세 세브란스 암센터), 다리(부산 낙동대교), 대규모 아파트 단지(마곡 도시개발사업지구 공동주택 신축공사) 등 지역과 공사 규모를 가리지 않고 다 조명 설계를 맡았다. 이중 서울 드래곤시티 조명이 올 7월 ‘제 7회 서울시 좋은빛상’ 대상을 수상했다.
“건축주, 건축가들께 항상 ‘건축의 최종 마감재는 빛’이라고 말씀드리죠.” 최근 서울 공덕동 ㈜루미노 사무실에서 만난 하선덕 대표는 “조명은 건물의 ‘피부’ 같은 역할을 한다. 배선공사가 필수라서 설계 단계부터 건축가와 조명 디자이너가 협업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국내 현실에서 이렇게 작업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조명 디자이너는 건물 내외부의 조명을 설계한다는 점에서, 조명 기구 디자이너보다 건축가의 일에 더 가깝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하 대표가 “조명에 입문한 건” 해외 조명 기구 수입 회사에 입사한 1998년부터다. “그 회사에 걸린 해외 도시 야경 사진들이 너무 멋있는 거예요. 그때 건축물 조명 설계만 담당하는 직업이 있다는 것도 알았죠. 우리나라에는 없는 직업이지만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죠.” 조명 수입 업체는 조명 설계를 건축주, 건축사무소에 팔며 수입품을 함께 팔았고 하 대표는 “회사에서 한 명 밖에 없는 디자이너”가 됐다.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 혼자 해결해야 하는 일이 많았는데, 그만큼 빨리 배웠죠. 입사 1년 후에 대기업 프리젠테이션을 혼자 맡을 정도였으니까요.”
조명 수입 업체와 조명 기구 설계 업체, 디자인사무소를 거치며 실내조명, 아파트, 호텔과 리조트, 공공 건물까지 거의 모든 건축 분야의 조명 설계를 맡았고 10년 만에 “회사 여직원 중 가장 높은 직급”이 됐다. “어느 순간 좋은 디자인을 하는 것보다 직원 관리 잘하는 게 제 업무가 돼 있더라고요. 3개 팀 운영하며 10개 프로젝트를 한꺼번에 맡은 적이 있는데 ‘안 되겠다’ 싶어 다 그만두고 해외로 연수 떠났죠.” 2011년 “관리자보다 디자이너로 성공하고 싶어” 조명디자인 설계사무소 ㈜루미노를 차렸다.
건물의 조명 설계만 담당하는 디자이너가 굳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하 대표는 “국내 ‘빛 공해 방지법’이 생기고 민원이 10배 이상 늘었다”며 에둘러 말했다. “건축주는 보통 투자한 분야에 눈에 띄는 결과를 바라거든요. 건물 지을 때 조명에 투자하면 그만큼 크고 화려해야 하는 거죠. 조명 기구 회사가 조명 설계까지 담당하는 경우도 많은데 조명 기구 회사는 제품을 많이 팔아야 되잖아요. 조명이 많아지고 화려해지면서 대규모 건축물이나 다리는 물론이고 산(山)에 설치된 보안등까지 ‘너무’ 밝은 경우가 생긴 거죠. 빛의 특성을 아는 디자이너가 있으면 이런 부작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좋은빛상 대상을 받은 드래곤시티 장식 조명은 건물 이름처럼 ‘용의 비늘’이 빛에 의해 반짝이는 이미지를 수백 개 창문의 빛을 통해 구현했다. 또 ‘ㄷ’자 모양의 건물 측면부와 상층부 업라이팅 조명(위쪽 방향 조명)을 이용해 ‘가상의 문’을 상상할 수 있도록 형상화했다. 하 대표는 “조명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건 건축가의 설계 의도다. 창문을 ‘용의 비늘’로 표현한 지점을 조명을 통해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세련되고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인상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명 디자인은 머무는 사람이 그 공간을 얼마나 편하게 향유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에요. 좋은 디자인을 넘어 감동을 줄 수 있는 빛을 구현하고 싶습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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