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북극에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갈 수 있을까요?” 북극에 다녀온 후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답은 어렵지 않다. “돈만 준비되면 당장이라도 가실 수 있어요. 북극 빙하와 크루즈 관광선이 있습니다.”
북극다산과학기지가 위치한 노르웨이 북쪽 스발바르 제도에는 여름철이 되면 관광선이 거의 매일 들어온다. 여름에도 두꺼운 외투를 입고 바다 위를 떠다니는 빙하와 북극곰을 볼 수 있기 때문인지, 비싼 비용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광객들이 북극을 찾는다.
내가 다산기지에 머물던 지난 7월에도 관광선이 부지런히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그러던 지난 7월 28일, 뜻하지 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스발바르를 항해하던 독일 관광선 ‘MS 브레멘’이 스피츠베르겐 섬에 정박해 있던 중 한 근무자가 북극곰의 공격을 당했고, 이를 발견한 다른 선원이 북극곰을 사살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환경 단체들은 북극곰 서식지를 사람들이 너무 깊숙이 들어간 것이 잘못이라고 비난했다. 물론 가까이 접근한 관광선의 잘못도 있지만, 북극곰이 원래 서식지를 벗어나 예전보다 활동 반경이 넓어졌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북극곰은 원래 바다 얼음 위에서 주로 물범을 잡아먹는 육식동물이다. 물범이 숨을 쉬러 얼음 틈으로 고개를 내미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재빠르게 덮친다. 바다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여름은 북극곰에겐 고난의 계절이다. 바다가 드러나면서 물범 사냥 성공률은 뚝 떨어지면 먹잇감을 찾아 육지에 올라온다. 그러다 가끔 조류가 번식하는 곳을 발견하면 알을 꺼내어 먹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북극의 온난화가 가속화되면서 여름철 바다 얼음이 더욱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미국 국립빙설자료센터(NSIDC)의 자료를 보면 197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에 10.4%씩 감소하고 있으며, 연간 7만5,000㎡가 사라졌다. 이 같은 추세라면 2030년부터 2050년 사이엔 여름철 북극 바다에서 얼음을 볼 수 없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 연구팀은 북극곰 취식행동 관련 자료를 모으던 중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최근 30년간 스발바르와 그린란드 육상에서 북극곰이 관찰되는 일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이다. 게다가 지난 10년 사이 북극곰이 육지로 올라오는 날짜가 30일 가까이 빨라졌다. 북극곰이 육지에 빨리 나타난 해에는 조류 둥지를 공격하는 일이 잦았고, 조류의 번식성공률은 90% 이상 감소했다.
올해 여름, 다산기지 인근 조류 번식지에서 비슷한 사례를 관찰했다. 북극제비갈매기와 흰뺨기러기 둥지가 북극곰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100여 개가 넘는 북극제비갈매기 둥지는 모두 사라져서 번식성공률은 제로였고, 흰뺨기러기는 다섯 둥지만 간신히 살아남았다.
최근 북극의 온난화 속도는 너무 빨라서 북극곰이 제대로 대처하기 힘들 정도다. 바다 얼음이 너무 빨리 사라져서 사냥은커녕 굶주리는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따라서 허기를 달래기 위해 조류 알이라도 먹는 것이다. 육지로 올라오는 일이 잦아지면서 인간을 마주칠 가능성도 높아진다. 결국 온난화로 인한 바다 얼음의 감소는 북극곰과 조류, 인간 모두에게 재앙이 되었다.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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