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 83%가 우울증상 느껴
절반은 최근 1년간 자살 생각
“남편이 쌍용자동차 입사 7년 차였던 2009년 해고 당시 셋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는데, 그 아이가 10살이 됐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지만 파업이 아니었으면 겪지 않았어도 될 일들, 상처, 기억은 누가 보상해줍니까.”
6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당신과 당신의 가족은 이런 해고를 받아들일 수 있나요: 쌍용차 해고자ㆍ배우자 실태조사 발표’에서 이정아 전 가족대책위원회 대표는 이렇게 울분을 터뜨렸다. 이명박 정권 시절인 2009년 2,646명의 대규모 정리해고로 시작된 쌍용차의 정리해고 철회 투쟁은 올해로 10년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옆에서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어야 했던 이들이 있다. 바로 쌍용차 해고자의 배우자다.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을 위한 건강실태조사를 진행한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는 “한국에서 정리해고가 합법화 된 20년 동안 해고 당사자의 고통은 얘기가 됐지만, 가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얘기된 바 없었다”고 취지를 밝혔다.
김 교수팀은 국가인권위원회, 심리치유센터 와락과 공동으로 올해 4~6월 쌍용차 해고자(89명)ㆍ복직자(43명)와 그들의 배우자를 해고자(28명)와 복직자(38명)로 나눠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이들의 정신건강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됐다고 밝혔다. 쌍용차 해고자 배우자 중 절반에 달하는 12명(48%)가 ‘지난 1년간 진지하게 자살을 생각해 본 적 있다’고 답했다. 또 해고자 배우자의 대다수(82.6%ㆍ19명)가 우울증상을 느끼고 있었다. 일반에 비하면 8배가 넘는다.
해고로 인한 ‘사회적 낙인’에 움츠러든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해고자 배우자들은 남편의 해고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끼거나(70.8%),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피하는(45.8%) 것으로 드러났다. 이정아 심리치유센터 와락 대표는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들은 대부분 평택이라는 좁은 지역사회에서 쭉 살아온 사람들이라 주변의 시선이나 손가락질에 움츠러들 수 밖에 없는 처지”라고 전했다.
해고가 해고당사자뿐 아니라 가족들의 몸과 마음까지 병들게 만든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사실은 아니다. 이날까지 자살이나 건강악화 등으로 세상을 떠난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들은 29명에 이른다. 2015년 노사 합의를 통해 해고자 일부가 복직됐지만, 여전히 130명이 복직대기 상태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