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권력에 오른 인물들마다 비리 등 문제로 자리에서 쫓겨나
“국민이 호출” 명분 내걸었지만 3자 대결로 인한 폭력사태 우려
“마다가스카르 성장 길목마다 정치적 위기가 늘 발목 잡아”
“정치인들은 늘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늘어놓거나, 우리의 자원을 약탈해간다.”
몸에 맞지 않은 정장을 차려 입은 한 남성이 우스꽝스럽게 몸을 흔들며 레드카펫을 걷다가 갑자기 자신의 구두 앞 코를 톱으로 자른다. 열 개의 발가락이 빼꼼하게 드러난 망가진 신발을 신고 빈민촌으로 향한 그는 흥겨운 리듬에 맞춰 정치인을 조롱하는 랩을 쏟아낸다. “나는 이렇게 사람들이랑 같이 살고 있다. 정치인들은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 받고 있는지 잘 모른다.” 노랫소리에 홀린 듯 남성 주위로 몰려든 빈민촌 주민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다 같이 신나게 춤판을 벌인다.
선거가 발목 잡는 나라, 대선 리스크 반복
5분짜리 이 영상은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서 유명한 코미디언인 라모라 파보리가 11월7일(결선투표는 12월19일) 대선 유세 활동에 쓰겠다며 만든 뮤직비디오다. 지난 7월 초 페이스북에 올라온 이후 3주간 20만 뷰를 기록했다. 인구(2,626만3,000명)의 단 5%만이 인터넷을 이용하는 마다가스카르에선 엄청난 흥행이었다고 아프리카뉴스는 보도했다.
아프리카 대륙 동남쪽 인도양에 위치한 섬나라 마다가스카르.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영화 이름으로 친숙한 나라지만, 신비롭고 평화로운 섬이란 이미지와 달리 마다가스카르 국민들의 삶은 힘겹기만 하다. 이들이 지긋지긋한 가난보다 더 분노하는 것은 정치다. 비영리 온라인 국제뉴스 매체인 글로벌보이스는 “마다가스카르는 대선을 치를 때마다 정치적 위기로 나라가 출렁였고, 경제 역시 발전은커녕 후퇴를 거듭했다”며 “11월 대선은 또 다른 위기와 폭풍을 몰고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다가스카르 대선의 역사는 파란만장 그 자체다. 대통령 자리에 오른 인물들마다 예외 없이 비리나 부정부패, 경제 실정 등이 문제가 돼 권좌에서 쫓겨났고, 그 때마다 정권 수호 세력과 반대 세력의 갈등으로 수백 명이 숨지는 유혈사태까지 벌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프랑스 르몽드의 아프리카 판은 “마다가스카르는 식민지 독립 이후 60년 간 외부 세력과의 전쟁이나 커다란 내전을 경험하지 않고도 빈곤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수께끼”라며 “국가가 성장하려는 길목마다 정치적 위기가 늘 발목을 잡은 탓”이라고 분석했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 명예 퇴진 없는 축출
대통령 자리를 향한 마다가스카르 정치인들의 권력 다툼은 한편의 무협 활극을 연상케 한다.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 이후 20년 가까이 권좌를 지킨 인물은 디디에 라치라카(82)다. 그는 그러나 2002년 요구르트 장사로 시작해 굴지의 기업을 일군 마르크 라발로마나나(69)에게 투표에서 패하며 결국 정권을 내준 뒤 가족들과 함께 세이셸 공화국으로 피신했다. 임기 초반 라치라카 측의 대선 불복 운동을 정면 돌파했지만, 라발로마나나 역시 명예롭게 퇴진하지 못했다. 2009년 당시 34세 정치신인 안드리 라조에리나(44)가 군부를 등에 업고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결국 라발로마나나도 정권 이양 동의서에 스스로 서명을 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2014년 대선은 두 사람의 대리전으로 치러졌고, 접전 끝에 라조에리나 집권 시절 재무부 장관을 역임했던 헤리 라자오나리맘피아니나(60)가 당선됐다. 그러나 그 역시 정권을 연장하겠다는 욕심으로 선거 날짜를 연기하는 무리수를 범하다가 두 번의 탄핵 위기를 겪었고, 그 배후엔 라조에리나가 있었다. 권력 앞에선 영원한 동지는 없었던 셈이다.
전직 대통령들 총출동, 그들만의 복수혈전
마다가스카르의 역대 대통령을 일일이 열거한 데는, 이들 모두가 이번 대선에 나설 후보자들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타이틀을 달았던 이들 4명을 포함해 총 35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다수의 후보들은 선거를 완주할 자금이나 세력이 없는 인물들로, 대통령에 출마했다는 정도의 이력을 얻기 위해 나선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이번 선거는 명예회복을 벼르고 있는 라발로마나나와 “이번만큼은 투표로 당선돼 정통성 시비를 없애겠다”는 라조에리나, 그리고 현직인 라자오나리맘피아니나 사이의 3자 대결로 갈 것이란 전망이다. 이들은 모두 “국민이 나를 호출했다”는 명분을 내걸었다.
그러나 대진표를 받아 든 마다가스카르 국민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들의 등장으로 또 다른 폭력 사태가 재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아프리카 종합언론 포털 올아프리카닷컴도 “이번 대선의 가장 큰 도전은 폭력을 배제한 채 평화 선거로 치러질 수 있는지 여부”라며 분위기를 전했다.
마땅히 찍을 사람이 없다는 점도 고민이다. 마다가스카르 국민들 입장에선 3명 공히 국정운영에 실패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라발로마나나는 집권 당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착수하는 등 성과도 있었지만, 2008년 우리나라 기업인 대우로지스틱스에게 130만㏊에 달하는 농지를 99년 간 독점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준 것을 두고 국부 유출이란 비판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다. 라조에리나는 임기 내내 권력의 정통성을 인정 받지 못한 탓에 국제사회로부터의 경제적 원조가 중단됐음에도, 국내 경제를 돌보지 않아 나라를 마이너스 성장률에 빠뜨린 무능한 지도자로 각인됐다. 라자오나리맘피아니나 역시 사익 추구를 위해 정국의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점에서 민심을 잃었다.
‘마다가스카르 식 민주주의’의 봄은 오나
그럼에도 국민들은 또 한번 속는 셈 치고 희망을 걸어보고 있다. 새로 뽑힌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최대 과제는 빈곤 문제 해결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자료 기준, 마다가스카르의 국민 1인당 총소득은 479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하위 5개 그룹에 속한다. 인구의 70%가 하루에 1달러 90센트 이하로 생활하는 극빈층이다. 올아프리카닷컴은 농업과 내수 시장이 취약하기 때문에 해외 원조를 늘리고 외국인투자를 활성화 하는 방식으로 경제 도약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프리칸아규먼츠에 따르면 마다가스카르는 12월부터 본격적인 우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결선투표가 진행되지 못할 수 있고 이 경우 2019년 5월까지 선거 기간이 연장될 수 있다. 11월 투표에서 결판이 나지 못하면 내년 5월이 돼서야 최종 승자가 가려질 수 있다는 얘기다. 김광수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 HK 교수는 “만약 쿠데타를 일으킨 세력을 제외하고 선거를 치른다면 더 큰 혼돈을 불러 올 수 있다”며 “차라리 모두 다 나와서 투표로 심판 받는다면 그 자체가 마다가스카르 식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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