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3조원대 높은 가격에도
2조2000억 제시하며 버티기
계속되는 신한금융 인수설에
오렌지라이프 주가 급락 결정타
“잘 샀고, 잘 팔았다.”
신한금융지주가 5일 오렌지라이프(옛 ING생명)를 최종 인수한 것에 대한 시장의 평가다. 신한금융에게 오렌지라이프는 KB금융지주에 내준 ‘리딩금융그룹’ 자리를 1년 만에 재탈환하면서 비은행 부문까지 강화할 수 있는 ‘여의주’다. 특히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버티기 전략과 승부사 기질은 인수 가격을 당초보다 7,000억원 낮추는 데 성공했다. MBK파트너스도 5년 만에 2조원도 훨씬 넘는 차익을 챙기게 됐다는 점에서 한몫 크게 남는 장사를 했다. 임원진은 돈방석에 앉게 됐다.
신한금융은 이날 임시 이사회를 열고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가진 오렌지라이프 지분 59.15%(4,850만주)를 인수하는 안을 결의했다. 주당 4만7,400원으로 총 인수대금은 2조2,989억원이다. 이사회 후 조 회장은 MBK파트너스가 설립한 특수목적회사(SPC)인 라이프투자유한회사와 주식매매계약(SPA)도 체결했다.
◇숨가빴던 인수 막전막후
조 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수합병(M&A) 의지를 피력했다. 신한금융의 몸집을 키우기 위해선 M&A 외엔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한금융이 오렌지라이프를 인수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가장 큰 걸림돌이 높은 가격이었다. MBK파트너스가 지난해 말 매각을 추진하며 내놓은 희망 가격은 3조원이다. 시장에서 큰 관심을 두지 않자 MBK파트너스는 올초 가격을 2조5,000억원으로 낮췄다. 협상이 시작될 여건이 마련됐다.
지난 3월 테이블에 앉은 신한금융은 2조2,000억원을 제시했다. 양측이 제시한 가격차가 크고 협상도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결국 4월 신한금융은 배타적 협상대상자에서 배제됐다.
물 건너 간 것으로 여겨졌던 협상이 다시 급물살을 탄 것은 오렌지라이프의 주가가 급락한 게 계기가 됐다. 신한금융 인수설이 꾸준히 거론되며 시장에선 ‘신한금융이 인수할 경우 현재 MBK파트너스의 고배당 정책이 어려울 것’이란 심리가 커졌고, 투자자들이 매물을 던지기 시작한 것. 2월 6만원대에 달했던 주가는 최근 3만원대로 주저앉았다.
상표권 계약 만료 문제로 올해 안 매각 완료를 추진해온 MBK파트너스 입장에선 가격을 더 낮출 수 밖에 없었다. 몸값이 2조4,000억원으로 내려가자 신한금융은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양측의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최종 가격은 2조2,989억원으로 정해졌다. 이는 신한금융이 지난해 처음 제시한 가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다. 버티기 전략이 주효했던 셈이다.
◇신한, KB금융 제치고 리딩뱅크 탈환
KB금융이 2012년 당시 ING생명 지분 100%를 2조2,000억원에 인수하려 했다 사외이사들의 반대로 포기했던 점을 감안하면 6년이 지난 시점에 지분 59.15%를 2조2,989억원 인수한 것을 대성공이라고 보긴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신한금융과 MBK파트너스 양측 모두 윈윈이 되는 협상이었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무엇보다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신한은행(순이익의 66%)과 신한카드(15%)에 편중돼 있는 신한금융 입장에선 오렌지라이프 인수로 생명보험 분야를 대폭 강화해 비은행 부문 포트폴리오를 개선할 수 있게 됐다. 특히 2020년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을 앞두고 생명보험업계 전반에 자본충당 부담이 큰 상황에서 지급여력(RBC) 비율 440%로 업계 최고 수준인 오렌지라이프는 알짜로 꼽힌다.
더구나 이번 인수로 신한금융은 지난해 KB금융지주에 내줬던 금융 1위 자리를 다시 되찾게 됐다. 6월 말 기준 신한금융의 총자산은 453조3,000억원으로, KB금융(463조3,000억원)에 못 미치지만, 오렌지라이프의 자산(31조5,000억원)을 더하면 484조8,000억원으로 불어나 KB금융에 앞서게 된다.
◇MBK파트너스도 5년만에 2조 차익
MBK파트너스도 ING생명 인수 5년 만에 2조원이 넘는 차익을 얻게 됐다. MBK는 2013년 8월 ING생명 지분 100%를 1조8,400억원에 인수했다. 이후 매년 당기순이익의 60% 가량을 배당하며 이미 6,149억원을 회수했다. 또 지난해 5월 ING생명 상장 당시 보유하고 있던 지분 40.85%를 구주매출 방식으로 시장에 매각하면서 1조1,055억원을 챙겼다. 이번 매각 대금 2조2,900억원까지 더하면 총 회수 금액은 4조104억원에 달한다.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을 보유한 오렌지라이프 임원진도 주식 매각 차익을 얻을 수 있게 됐다. 정문국 사장(77만9,000주), 앤드류 바렛 부사장(38만9,500주) 등 임원진은 총 216만주를 주당 2만2,439원에 사들일 수 있는 옵션을 보유하고 있다. 임원진이 신한금융이 사들인 가격(주당 4만7,400원)에 주식을 매각할 경우 정 사장 194억원 등 총 541억원의 차익을 볼 수 있다.
◇조직 문화 등 크게 달라 화학적 결합은 과제로
남은 과제는 향후 어떻게 시너지를 내느냐다. 시장에선 당분간 오렌지라이프가 신한생명과 통합되지 않고 신한금융의 계열사로서 별도 운영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오렌지라이프와 신한생명의 조직문화와 영업방식 등은 크게 다르다. 외국계 보험사로 출발한 오렌지라이프의 경우 특유의 자유롭고 수평적인 문화가 정착돼 있는데다, 강남권을 중심으로 한 젊은 영업사원들의 대면영업이 강점이다. 반면 신한생명은 40ㆍ50대 여성 설계사와 텔레마케팅(TM)이 주축이다. 이밖에 오렌지라이프 노조의 고용보장 요구 등도 신한금융이 풀어야 할 숙제다. 오렌지라이프 노조는 매각 후 7년간 고용안정 보장, 매각가 10% 규모의 위로금 지급을 사측에 요구하고 있다.
‘리딩 금융그룹’ 자리를 놓고 조 회장과 윤종규 KB금융 회장 간 자존심을 건 라이벌전도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사실 양측은 2000년대 초부터 크고 작은 M&A를 통해 업계 1위를 놓고 경쟁해 왔다. 신한은행은 2003년 조흥은행을 3조3,000억원에 인수하면서 단숨에 국내 2위 은행으로 도약, 당시 1위였던 국민은행을 위협했다. 이어 신한카드가 2006년 6조6,765억원에 LG카드마저 인수하면서 카드업계 1위까지 꿰찼다. 덕분에 신한금융지주는 2008년부터 당기순이익 기준으로 KB금융을 추월한 뒤 9년간 ‘리딩 금융그룹’ 자리를 유지했다. 그러나 KB금융이 2015년 LIG손해보험, 2016년 현대증권을 연달아 사들이면서 지난해 1위 종합금융지주 자리를 내줬다 이번에 다시 탈환했다.
한편 이날 신한지주 주가는 3.19% 하락한 4만2,450원, 오렌지라이프도 1.44% 내린 3만4,200원에 마감됐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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