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아남은 아이’ 최무성
아들 잃은 아버지 역할로 호평
용서와 치유 묵직한 질문 던져
“고통 속 인간에 대한 온정 다뤘죠”
택이 아빠ㆍ살인마 등 폭넓은 연기
‘미스터 션샤인’에선 장포수 역할
고아, 과부, 홀아비라는 말은 있어도, 자식 잃은 부모를 일컫는 단어는 없다. 그 엄청난 고통을 감히 헤아릴 수도, 차마 표현할 수도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화 ‘살아남은 아이’(상영 중)에서 배우 최무성(50)은 울부짖는 대신 묵묵히 견디고 버틴다. “인간은 누구나 고통 앞에선 나약하고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고통을 성숙하게 받아들인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지난달 31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최무성이 조심스럽게 물음표 하나를 건넸다.
‘살아남은 아이’는 이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아들을 잃고 아들 대신 살아남은 아이 기현(성유빈)과 가까워지며 상실감을 이겨 내던 부부 성철(최무성)과 미숙(김여진)이 어느 날 아들의 죽음에 얽힌 진실과 맞닥뜨리며 겪는 혼란과 절망을 그렸다. 신동석 감독의 데뷔작인 이 영화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을 받았고, 올해 초 베를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됐다. 한 걸음 떨어져서 세 인물을 고요히 응시하는 시선이 사려 깊다.
최무성은 “납득하려 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었다”고 했다. “저도 중학교 3학년 아들을 두고 있어요. 아들이 미숙아로 태어나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죠. 숨이 턱 막혀 오고 지옥에 내던져진 것 같은 심정. 부모라면 누구나 알 겁니다.”
성철은 아들이 의사자로 지정돼 받은 보상금을 학교에 장학금으로 기부한다. 학교를 나와 방황하고 있는 기현이 자립할 수 있도록 자신이 운영하는 인테리어 가게로 데려와 도배 기술도 가르친다. 최무성은 “아들을 위해서도 기현을 위해서도 아닌, 성철 자신을 위한 일이었을 것”이라며 “체면을 신경 쓰는 전형적인 기성세대의 모습으로 해석했다”고 말했다.
언뜻 무심한 듯 보이는 담담하고 간결한 연기가 영화에 질감을 입힌다. 최무성은 “감정을 절제함으로써 더 큰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연기가 잔상을 오래, 짙게 남기는 이유다. “인물에 빠져 있을 때 느껴지는 특유의 즐거움이 있어요. 그것이 비록 고통이더라도 말이죠. 성철의 감정을 정직하게 표현해야겠다는 목표 안에서 배우 본연으로 즐겼습니다.”
영화는 한 아이의 죽음을 둘러싼 세 인물의 관계를 차분히 펼쳐 내며 진정한 속죄와 용서, 상실의 치유와 애도가 가능한 것인지, 만만치 않은 질문을 던진다. 최무성은 “배우는 영화 속 현실을 사는 사람일 뿐”이라며 답을 관객에게 맡겼다. “다만, 이런 바람은 갖고 있어요. ‘살아남은 아이’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영화로 남기를. 분명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자부합니다. 고통을 다룬 영화이지만 그 바탕엔 인간에 대한 온정이 깔려 있어요. 인간을 정직하게 바라보려는 감독의 노력을 배우들이 느꼈듯, 관객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저예산 독립영화의 저변을 넓히는 데도 이 영화가 힘이 됐으면 합니다.”
최무성은 요즘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으로도 안방 시청자를 만나고 있다. 애신(김태리)의 스승인 의병 장포수 역이다. ‘살아남은 아이’에서 기현을 연기한 성유빈이 장포수의 아역으로 나왔다. JTBC ‘무정도시’(2013)와 영화 ‘순수의 시대’(2015)에서도 만난 인연이 있다. 최무성은 “유빈이가 워낙 잘나가니까 내가 유빈이를 만날 기회가 생긴 것 아니겠냐”며 껄껄 웃었다.
‘미스터 션샤인’ 이전에는 tvN ‘응답하라 1988’(2016)에서 최택(박보검)을 아들로 둬 줄곧 ‘택이 아빠’라 불렸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2010)에선 인육을 먹는 살인마로 열연한 ‘반전 과거’도 갖고 있다. 출연작 목록도 어마어마하다. ‘세븐 데이즈’(2007)와 ‘방자전’(2010)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2011) ‘베를린’(2013) ‘연애의 온도’(2013) 등 영화 40여편, KBS ‘공주의 남자’(2011)와 JTBC ‘송곳’(2015) MBC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2017) 등 드라마 20여편에 크고 작은 배역으로 나왔다. 연극 연출가로 틈틈이 공연도 올린다. ‘미스터 션샤인’을 촬영 중이던 지난 7월에도 연극 ‘부정’을 연출했다.
영화, 드라마, 연극까지 최무성을 찾는 곳이 많아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하지만 젊은 시절엔 일이 안 풀려서 개명을 고민한 적도 있다고 한다. ‘최무성’은 그때 지은 예명이다. “한자를 풀면 ‘밭을 꾸준히 간다’는 뜻이에요. 배우가 평생 직업인데 이보다 더 좋은 이름이 있을까 싶어요. ‘악마를 보았다’ 때부터 사용하고 있어요.”
연극에 매진하다 서른다섯 살에 영화, 드라마로 발을 넓혔다. 창작의 즐거움, 관객에게 인생을 돌아보는 기회를 준다는 보람, 이 두 가지가 최무성이 연기를 하는 이유이자 동력이다. “배우로 참여하는 영화든, 연출하는 연극이든, 내 작품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이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현실을 호도하거나 포장해서도 안 되겠죠. 참여한 작품이 많아질수록 책임감도 커집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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