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마지막 천국’ 명성에 오점
반밀렵부대 철수 후유증인 듯
아프리카대륙 남부 내륙에 위치한 보츠와나공화국은 멸종위기 야생 코끼리의 ‘마지막 천국’으로 통한다. 상아의 불법 채취를 막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중무장한 ‘반(反)밀렵 부대’를 운용했고, 밀렵꾼들에 대해선 ‘무관용’ 정책을 취했다. 때문에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이 무분별한 코끼리 밀렵으로 몸살을 앓았던 것과는 달리, 인간 탐욕에 희생되는 코끼리가 거의 없는 ‘안전 지대’라는 국제 명성도 얻었다. 아프리카에서 코끼리 개체 수(13만마리)가 가장 많은 이 나라의 ‘오카방고델타 야생동물보호구역’은 그래서 전 세계 여행객이 몰려드는 유명 관광지가 됐다.
그런데 바로 이 나라에서 최근 야생 코끼리 87마리가 떼죽음을 당한 채 발견돼 충격을 주고 있다고 영국 BBC방송이 3일(현지시간) 전했다. 대부분 상아가 뽑힌 상태였던 데다 사건 현장도 주변국과의 국경 지대가 아니라 국토 한가운데 내륙 지방이었다는 점에서, 이제 보츠와나에도 밀렵꾼들이 깊숙이 침투했다는 ‘위험 신호’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BBC에 따르면 보츠와나 환경단체 ‘국경없는코끼리’는 수 주일 전, 오카방고델타 야생동물보호구역 인근에서 코끼리 87마리의 사체를 발견했다. 상아를 노린,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최대 규모 밀렵 흔적이라는 게 이 단체의 설명이다.
조사에 참여한 마이크 체이스 박사는 “충격적이고, 완전히 경악할 정도”라며 “지금까지 기록된 밀렵 가운데 가장 큰 규모”라고 말했다. 이어 “2015년 내가 조사했던 수치와 비교하면, 다른 아프리카 국가보다 (보츠와나에서) 코끼리 밀렵이 두 배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연구에서 아프리카 코끼리는 10년간 3분의1이 죽임을 당했고, 탄자니아에선 5년간 60% 개체 수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은 ‘반밀렵 부대 무장해제’에서 초래된 것으로 보인다. 보츠와나 정부는 모크위치 마시시 대통령 취임 한 달째인 지난 5월, 야생동물보호구역 인근 군 부대에서 무기와 군사장비를 철수시켰다.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진 않았지만, 그 대신 취해진 조치는 ‘국경 경비 강화’였다. 밀렵꾼들이 활개를 칠 수 있는 빈틈이 생긴 셈이다.
결국 이번 코끼리 떼죽음 사태는 밀렵 방지 문제가 보츠와나에도 임박했다는 ‘경고’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체이스 박사는 “이제 밀렵꾼들이 보츠와나에 총구를 겨누고 있다. 야생동물보호의 최전선에 있어 왔던 보츠와나의 ‘정치적 의지’가 필요하다”면서 정부 차원의 긴급하고 즉각적인 조치를 촉구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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