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월드컵에서 한국이 멕시코에 1-2로 패한 다음 날, 신태용(49) 전 국가대표 감독은 수비수 장현수(27ㆍFC도쿄)를 방으로 불렀다. 연이은 실수를 저지른 장현수는 ‘악플’에 잔뜩 위축돼 있었다.
“현수야 괜찮니?”
“감독님, 어젯밤 한 숨도 못 잤습니다.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보탬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독일전은 안 뛰었으면 좋겠습니다.”
신 감독은 당황했다. 주전 미드필더 기성용(29ㆍ뉴캐슬)이 부상당해 독일전에는 장현수를 대신 미드필더로 올릴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신 감독이 다시 물었다.
“현수야 SNS 보니?”
“안 봅니다.”
“잘했다. 보지 마. 보는 순간 너는 자살하고 싶을 거야. 나는 너보다 (비난이) 더해. 너랑 나는 한국 돌아가면 발붙이고 못 산다. 나도 더 이상 감독 못 할 거고. 독일전 잘 마무리하고 미련 없이 물러나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줄 수 있겠니.”
“생각해 보겠다”고 자리를 뜬 장현수는 그날 오후 “다시 준비 하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신 감독이 지난 달 31일 ‘한국축구과학회 컨퍼런스’ 강연에서 털어놓은 이야기다. 월드컵 후 공식석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그는 이날 애써 웃으며 “전 감독 신태용입니다”라고 자기 소개를 한 뒤 30여 분에 걸쳐 월드컵 준비 과정, 소회를 비교적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신 감독을 향해 일부에서는 인격 비하 발언까지 해가며 비난하지만 러시아에서 한국 경기를 본 외국 관계자, 지도자 반응은 조금 달랐다고 한다.
디펜딩 챔피언이자 세계랭킹 1위 독일을 꺾은 ‘사건’이 호평 일색인 건 당연하고 스웨덴, 멕시코전도 “한국이 저 정도면 선전한 것”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한국이 57위, 멕시코 15위, 스웨덴 24위였으니 그들 눈에는 분개하는 국내 반응이 오히려 의아했을 수 있다.
신 감독 후임으로 지휘봉을 잡은 파울루 벤투(49) 감독도 소집 첫 날인 3일 “한국이 월드컵에서 절망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첫 두 경기는 못 이겼지만 근소한 차로 패했다. 실패한 대회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단순한 ‘립 서비스’는 아닌 듯하다. 벤투 감독은 논란의 중심에 섰던 장현수를 발탁하며 “기술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선수다. 여러 포지션에서 뛴 멀티 플레이어임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월드컵 기간 내내 대표팀과 동행하며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 김판곤 국가대표선임위원장은 신 감독 공과를 정확하고 균형 있게 다룬 ‘기술백서’를 펴낼 예정이다. 그는 “천하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도 바로 옆에서 보면 지적할 게 100개는 나올 것”이라는 말을 했다. 바둑 두는 ‘선수’보다 옆에 있는 ‘훈수꾼’이 판을 잘 보는 이치를 뜻한다.
‘벤투호’가 출항했다. 좋은 날도 있겠지만 고비도 맞을 것이다. 그 때 ‘축구에 대해 말하긴 쉬우나 축구를 하는 건 어렵다(Talking football is easy, playing football is difficult)‘는 평범한 격언을 한 번쯤 곱씹어 봤으면 한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