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개국 정상 불러 베이징서 포럼… 미중 패권 다툼 속 우군 확보 의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막대한 ‘차이나 머니’를 앞세워 아프리카 54개국 중 53개국의 국가 수반을 베이징(北京)으로 불러들였다. ‘무역전쟁’을 비롯해 미국과의 갈등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우군을 확보함으로써 ‘다자주의 및 개발도상국의 리더’로 자리 매김하는 한편 지구상의 마지막 이머징마켓(신흥시장)인 아프리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함이다.
시 주석은 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ㆍ아프리카 협력포럼 정상회의’(FOCAC) 개막연설에서 “중국과 아프리카는 일대일로(一帶一路ㆍ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공동 건설과 아프리카 연맹 목표 등을 결합해 전면적인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중국과 아프리카는 실질적인 운명공동체로 발전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과 아프리카 국가들은 다자무역 체계를 수호하고 아프리카의 평화ㆍ안전 문제에서 긴밀히 소통해 개도국의 이익을 굳건히 지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전쟁을 의식한 듯 자유무역 수호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시 주석은 지난 1일 가봉ㆍ모잠비크ㆍ가나ㆍ이집트 등 11개국 국가수반들과 연쇄 정상회담을 갖는 등 이날까지 무려 30여개국의 아프리카 정상을 개별적으로 만나는 강행군을 소화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일부 정상들과는 오는 9일까지도 일정이 잡혀 있을 정도다. 중국이 러시아에 시 주석의 동방포럼(11~13일) 참석을 확약하면서 일주일 이상 일정을 늦춰달라고 요청한 건 FOCAC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보여준다. 중국은 2006년 35개였던 아프리카의 FOCAC 참가국 수를 이번엔 53개까지 늘렸다. 유일한 대만 수교국 에스와티니도 조만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하며 중국과 수교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이번 FOCAC에서 예상대로 대규모 선물보따리를 준비했다. 2016년 남아공에서 열린 FOCAC 당시 600억달러(약 66조6,480억원) 투자 계획을 밝힌 뒤 아프리카 각지에서 인프라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중국은 이번에도 시 주석이 직접 150억달러(약 16조6,870억원) 규모의 추가 기금 마련 계획을 천명했다. 시 주석이 서구의 텃밭으로 여겨져 온 아프리카에 대외정책의 핵심인 일대일로(一帶一路ㆍ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및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의 연계를 제안하며 천문학적인 돈을 뿌리는 건 다분히 미국을 의식한 조치다. 미중 패권 다툼이 장기전에 돌입한 상황에서 우군을 늘림으로써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다.
중국은 중장기적으로 아프리카를 새로운 시장으로 개척하려는 의지도 뚜렷하다. 아프리카는 원유ㆍ철광석ㆍ구리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인건비가 중국의 20~30% 수준이어서 사양산업 또는 노동집약적 기업체의 이전이 용이하다. 또 아프리카가 본격적인 산업화 단계로 진입하면 건설ㆍ물류ㆍ통신분야 등의 인프라 수요도 엄청날 전망이다. 중국 입장에선 지금 당장 대아프리카 수출을 대폭 늘려야 할 필요성도 크다. 미중 무역전쟁이 마무리되더라도 이전의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만큼 저가 제품의 새로운 수요처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중국 국무원은 대미 교역 축소에 대한 대비책 중 하나로 5년 내 대 아프리카 수출을 5,000억달러(약 556조2,500억원) 이상으로 늘리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미국과의 무역 갈등, 북한 비핵화 협상 지연 등 중요한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시 주석이 아프리카 정상들을 만나는 데 모든 일정을 쓰는 건 아프리카를 중국의 우군으로 끌어들여 미국에 맞서는 ‘개도국 지도자’가 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며 “중국으로선 아프리카를 중국의 미래 시장으로 만들겠다는 야심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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