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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국형 연금 모델 만들기

입력
2018.09.02 14:53
수정
2018.09.02 21:2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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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와 재정, 고령화 문제 얽힌 국민연금

출구는 기초ㆍ퇴직연금 포함한 다층연금

시민 참여로 연금개혁 공감대 형성 시급

사회복지에서 국민연금만큼 뜨거운 제도는 없을 듯하다. 전문가마다 의견이 무척 다르다. 누구는 재분배제도라고 또 누구는 역진적이라 비판한다. 기금 소진을 두고서도 한쪽에선 큰 일이라고, 다른 쪽에선 아직 남아 있으니 괜찮다고 말한다. 국민연금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마음도 양면적이다. 좋은 제도인데 늘 ‘불안’이다. 국가가 있는 한 지급된다고 설명해도 못 받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사라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국민연금은 복잡하다. 복지 ‘제도’이면서, 장기 ‘재정’을 계산하고, 대규모 ‘기금’을 운용한다. 일반 복지가 1차 방정식이라면 국민연금은 3차 방정식이다. 게다가 다른 나라와 달리 급여와 보험료의 수지불균형이 크다. 여기에 고령화 속도마저 빨라 숙제의 난이도가 갈수록 높아만 간다.

이럴수록 ‘있는 그대로’ 사실을 직시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문제를 푸는 실마리도 찾을 수 있다. 우선 국민연금 재정계산의 결과를 부정하지 말자. 현행 제도를 그대로 놔두면 기금 소진이 앞당겨지고 당시 세대의 부담이 무거울 거라는 진단이 나오자, 일부에서 어떻게 먼 미래를 알 수 있느냐며 불가지론을 제기한다. 해방 이후에 오늘날을 예상하는 황당한 작업이라는 비판이다.

물론 당시 누구도 오늘의 스마트폰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연금의 재정계산과 한참 뒤 사회를 그려보는 미래학을 혼동하지 말자. 재정계산은 긍극적으로 연금재정을 구성하는 양 면적, 즉 총수입과 총지출의 구조를 파악하는 작업이다. 미래 전망에서 경제, 인구 등 여러 변수의 예측값에서 오차가 발생하더라도, 수입(보험료율)과 지출(대체율)이 모두 소득이라는 동일 변수에 연동되기에 연금재정의 기본 구조는 진단할 수 있다. 선진국 역시 그렇다. 핀란드는 우리나라처럼 70년, 스웨덴, 캐나다, 미국은 75년, 일본은 100년을 계산한다. 비록 불편한 수치일지라도 재정계산 결과를 논의의 준거로 삼아야 한다.

이러면 국민연금에서 현세대와 후세대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에 비해 후세대가 짊어져야 할 부담이 너무 크다. 현재 선진국에서 연금제도가 온전히 작동할 수 있는 건 우리와 비슷한 급여 수준에서 약 2배의 보험료를 내고 또한 미래 고령화에 대비해 다양한 자동안정화 장치까지 마련해 놓았기 때문이다. 공적연금이 추구하는 세대간 연대는 당위로 구현되는 게 아니다. 노후부양에서 현세대와 후세대가 책임지는 몫이 공평할 때 서로에 대한 존중이 가능하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후세대가 저편에 앉아 있다고 가정하고 우리의 책임 몫을 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보험료를 대폭 올리자고? 물론 지금보단 더 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 가계가 감당할 수 있는 한도도 감안해야 한다. 보험료를 계속 올려 기금이 무작정 늘어나는 것도 유의해야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현실적으로 대체율을 상향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재정안정화와 수명 연장을 고려하면 더 낮아질 수도 있다.

결국 국민연금 문제는 국민연금을 넘어서야 출구를 찾을 수 있다. 10년 전에는 법정연금으로 국민연금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기초연금, 퇴직연금이 있다. 조만간 30만원에 이를 기초연금을 더 강화하고, 퇴직연금은 일시금 대신 연금 형태로 발전시키자. 이러면 국민연금은 재정의 지속가능성 개혁에 집중할 수 있다. 중하위계층은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중상위계층은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을 중심으로 노후를 대비하는 ‘한국형 다층연금체계’이다.

다음 달에 정부가 연금개혁안을 발표한다. 국민연금은 여러 오해와 불신을 지닌 주제이기에 ‘아래로부터 논의’가 절실하다. 예전처럼 사회적 기구가 만들어질 듯한데, 연금 논의가 몇 개 단체의 대표자로 독과점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영국의 사례를 본보기로 삼아, 지역별 순회 ‘공론장’을 마련해 연금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도를 높이며 개혁의 공감대를 형성해 가야 한다. ‘있는 그대로’ 연금의 현실을 직시하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연금정치를 통해, 한국형 연금 모델을 만들자.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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