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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부동산 중개업소 순례기

입력
2018.09.0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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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을 확인한 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다. 다리가 짧고 몸통이 긴 개가 문 앞에 앉아 있다. 저런 개를 뭐라고 부르더라? 영국 왕실에서 키우는 견종이라던데. 눈이 마주치자 개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본다. 반기는 눈빛도, 경계하는 눈빛도 아니다. 사무실 안에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와 아무리 많이 잡아도 20대 중반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여자가 각자의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두 사람 모두 통화중이다. 여자가 나에게 문 앞에 놓인 소파에 앉으라고 손짓한다.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아 개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전철역에서 5분 거리에 있다는 복층 빌라를 보러 왔다. 오다가 보니 동네 분위기가 황량하다. 전철역이 새로 생기면서 원래 있던 공장들이 나가고 그 자리에 새로 빌라들을 짓는 중인 것 같다. 가건물 사이로 가로등도 없는 좁은 골목을 통과하면서, 아직 집을 보지 않았음에도, 아무래도 이 동네로는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화를 끝낸 여자와 함께 차를 타고 집을 보러 간다. 신호 대기에 걸려 멈춰선 틈에 말을 걸어 본다. “제가 며칠 집 보러 다니면서 만난 분들 중에 가장 젊은 분 같아요.” 운전대를 잡은 앳된 얼굴의 그녀는 나를 돌아보지 않은 채 앞만 보며 대답한다. “이 동네 빌라로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서울로 출퇴근하는 젊은 사람들이라. 여기서는 젊은 사람들이 부동산 일을 꽤 해요.”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 때 신호등이 바뀌고 좌회전 화살표가 나타난다. 인도와 가까운 2차선 맨 앞에 서 있던 우리 차가 갑자기 차선을 가로지르며 좌회전을 한다. 내가 놀라서 바라보자 그녀는, “제가 길치라서.” 처음으로 미소를 보이며 변명한다. 어쩌면 지금 보러 가는 집을 내가 계약하지 않으리라는 걸 이미 짐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번 달에 몇 건의 중개를 성사시켰을까. 얼마나 돈을 벌었을까.

그녀와 헤어진 뒤 몇 시간 전에 방문했던 부동산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나에게 아파트를 보여준 중년의 남성 중개업자에게 오전에 본 집을 계약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 생신이라 일찍 퇴근하려는 참이었다면서 서둘러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는 계약할 집의 등기부 등본을 프린터로 뽑고 있었다. “보시다시피, 융자가 잡혀 있어서,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았어요. 이미 다 갚은 건데, 기록 말소 신청을 하지 않았답니다. 잔금 치르기 전에 서류 정리한대요.” 그는 집주인이 내일 당장 계약을 하자고 했다며 시간을 정하라고 했다. 나는 그의 노련한 태도와 차분한 목소리에 안심했고, 다음날 계약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왜 등기부에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는 집을 계약하겠다고 했지? 왜 그 자리에서 계약금 일부를 집주인에게 송금했지? 잠시 넋이 나갔나. 집 보러 돌아다니는 일에 너무 지쳤나. 아니, 그게 아니다. 당장 그 자리에서는 중개인이나 집주인이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몇 년마다 한 번 겪는 이 과정이 항상 힘들고 괴로운 이유는,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을, 그들의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신경을 곤두세운 채 끊임없이 의심하고 확인해야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집에 돌아와 나는 부동산에 다시 전화를 걸어 ‘깨끗한 등기부’를 뗄 수 있을 때까지 계약을 연기하겠다고 말했다. 중개업자는 선선히 그렇게 하자고 대답했다. 누군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는 끊임없는 의심하는 것으로 상대에게 내가 호구가 아님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그러니 의심이 곧 신뢰의 도구라고.

부희령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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