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되어주세요] 181. 네 살 비글 레드, 분홍, 민트, 초록, 베이지
1만3,487마리. 지난 한 해에만 실험에 사용된 개의 숫자입니다. 하지만 지난 16년간 실험에 동원된 15만 마리가 넘는 개 가운데 실험실 밖으로 나온 건 수십 마리에 불과합니다. 실험기관은 굳이 개를 비롯해 실험동물들을 밖으로 내보낼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실험동물은 실험실 내에서 안락사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또 아직까지 실험기관이 실험동물을 내보낸다 해도 이를 돌봐주고, 입양을 보내는 관리체계도 없는 것도 현실입니다.
레드, 분홍, 민트, 초록, 베이지. 모두 2014년 7월 30일에 태어난 비글 수컷입니다. 실험을 위해 태어난 이 다섯 마리는 한 살이 될 때까지 오로지 실험용으로 키워졌고, ‘순화과정’을 거친 후 실험에 적합하다고 판단됐습니다. 실험에 적합하다는 것은 ‘비글 스럽지’ 않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즉 사람들이 주사기를 찔러도 공격성도 없고 말 그대로 실험하기에적합하다는 거지요. 이들은 비글이지만 비글같지 않은 성격 탓에 3년을 한 제약회사 연구소 실험실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연구원들은 3년간 고생한 실험견들에게 새 삶을 살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약물흡수와 신체 내 변화 등을 체크하는 약동학 실험에만 동원돼 입양을 가도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7월24일 아홉 마리의 실험견을 유기동물을 돕는 자원봉사 단체 ‘동물과 함께 행복한 세상’(동행)에 인계했습니다. 태어난 지 딱 4년 만입니다. 이 중 네 마리는 새 가정을 찾거나 다른 가정에 임시 보호 중이며 지금은 다섯 마리가 입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 실험견 구조는 제약회사의 연구원들의 결정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이들은 3년 전에도 13마리의 비글을 동행에 인계한 바 있는데요. 처음에 실험견들을 실험실 밖으로 내보낼 때에는 부담도 컸지만 13마리의 비글들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이번에도 결심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연구원들은 인계하기 한달 전에도 밖으로 나갈 실험견 아홉 마리와 봉사자들이 만날 기회를 줬습니다. 그날은 개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땅을 밟아 본 날이기도 했습니다.
레드, 분홍, 민트, 초록, 베이지는 모두 8~12㎏로 비교적 아담한 덩치입니다. 구조 이후 건강 검진을 했는데 주사기를 찔러도 피하지 않고 잘 참아내 수의사들이 놀랄 정도였다고 합니다. 레드를 제외한 네 마리는 건강에 이상이 없습니다. 처음에 건강에 문제가 없었던 레드는 최근 경련 증세를 보여 건강 상태를 지켜봐야 한다고 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모두 개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사람을 좋아하는 게 공통점입니다.
안타까운 공통점도 있습니다. 산책을 해보지 못했고, 빛이나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소리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겁니다. 간식도 먹을 줄 모른다고 하네요. 하지만 이들도 완벽한 반려견이 될 수 있습니다. 개들이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려주고 보듬어 줄 가족이 있다면 말입니다. 실험견으로 살아가다 현재는 한 가족의 막내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13마리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지난 3년간 레드, 분홍, 민트, 초록, 베이지가 사람의 손길을 받을 수 있었던 유일한 순간은 실험에 동원하기 위해 실험실 문이 열릴 때뿐이었습니다. 이 다섯 마리가 좋은 입양가정을 만나 간식이 뭔지, 산책이 뭔지, 진정한 가족이 뭔지 알게 되면 좋겠습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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