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결혼식’ 예상 밖 관객몰이
13년에 걸친 첫사랑의 애틋함과
20대의 현실을 버무려 ‘입소문’
“사회 이슈ㆍ역사물에 피로감 느껴”
외면했던 국산 로맨스 부활 조짐
내달 개봉하는 ‘나비잠’도 기대
때이른 가을, 극장가에 사랑이 꽃피었다. 대작 영화들의 틈새에서 로맨스 영화 ‘너의 결혼식’이 예상 밖 관객몰이로 흥행 열기를 더해 가고 있다. 여름 대목의 끝물이라 관객이 썰물처럼 빠졌는데도 22일 개봉해 6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고, 29일까지 128만1,809명을 동원했다. 이날 새 영화 ‘상류사회’가 경쟁에 가세했지만 8일째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켰다. 흥행성이 약하다는 이유로 극장가에서 사라진 로맨스 영화, 더구나 ‘메이드 인 충무로’ 로맨스 영화의 선전이라 더욱 고무적이다.
‘너의 결혼식’은 개봉 당시만 해도 큰 기대를 받지 못했다. 관객이 선호하는 장르가 아닐뿐더러 ‘신과 함께-인과 연’ ‘공작’ ‘목격자’ 같은 경쟁작에 비해 중량감도 부족했다. 호감도 높은 배우 박보영이 출연하지만 티켓 파워를 발휘할 만한 작품도 아니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볼 만하다’는 평이 나오면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상영 첫 주에는 평일 관객이 7만~9만명 수준이었는데 둘째 주에는 10만명으로 불었다. 문화의 날인 29일에는 전날 관객수보다 두 배 가까운 17만명 가량을 불러모았다. 홍보사 퍼스트룩 신보영 실장은 “첫 주말이 지나면 관객수가 줄어드는 게 일반적이지만 ‘너의 결혼식’은 이례적으로 평일 관객수와 예매량이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너의 결혼식’은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생, 취업준비생, 사회초년생 시절까지 13년간 친구와 연인 사이를 오간 두 남녀의 첫사랑 이야기다. 자꾸만 타이밍이 엇갈리는 애틋한 감정을 20대 청춘의 팍팍한 현실에 버무려 낸 ‘현실 로맨스’에 영화 속 주인공과 같은 또래인 20대와 10대가 특히 호응했다. CGV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8일까지 ‘너의 결혼식’을 본 관객 중 20대 비율은 52%로 같은 기간 전체 평균(38.4%)을 크게 웃돌았다. 10대도 전체 평균(4.1%)의 두 배인 8.1%로 나타났다. 반면 ‘공작’은 20대와 10대가 각각 31.4%와 2.9%, ‘신과 함께-인과 연’은 28.8%와 4.1%로, 전체 평균과 비슷했다. 김대희 CGV 홍보팀 부장은 “‘너의 결혼식’은 다른 영화에 비해 여성 관객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며 “가족 관객 중심이었던 여름 시장이 여성 관객 주도 시장으로 넘어가는 시기적 변화와 맞물려서 흥행 시너지를 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너의 결혼식’은 개봉 시기만 잘 맞으면 로맨스 영화도 충분한 시장성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늑대소년’(2012ㆍ665만명)과 ‘건축학개론’(2012ㆍ411만명), ‘뷰티 인사이드’(2015ㆍ205만명) 이후 눈에 띄는 로맨스 영화가 없었지만, 올해 3월 260만명을 동원한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 이어서 ‘너의 결혼식’까지 흥행에 성공하며 국산 로맨스 영화의 부활 조짐이 보이고 있다. 다음달 6일에는 ‘고양이를 부탁해’(2001)의 정재은 감독이 연출한 ‘나비잠’도 개봉한다. ‘나비잠’은 기억을 잃어가는 소설가와 한국인 유학생의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돼 호평받았다. 일본배우 나카야마 미호와 한국배우 김재욱이 호흡을 맞췄다.
‘너의 결혼식’을 제작한 필름케이 김정민 대표는 “최근 몇 년간 한국영화가 다뤄 온 사회 이슈와 역사 같은 거시적 주제에 피로감을 느낀 관객들에게 로맨스 영화가 오히려 희소성 있는 장르로 신선하게 다가간 것 같다”고 평했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관객이 자신들의 다양한 취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면서 전형적인 시장 패턴에 균열을 내는 중급 영화가 최근 자주 등장하고 있다”며 “로맨스 영화처럼 특정 관객층의 수요를 다양하게 반영할 수 있는 독자적인 시나리오 개발도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아무리 시나리오가 뛰어나도 흥행에는 한계가 있다는 선입견 탓에 투자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너의 결혼식’도 제작비 투자를 받는 과정에서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김정민 대표는 “오랫동안 시장에서 홀대받은 장르이다 보니 최근에는 로맨스 영화에 관심을 가진 작가와 감독도 많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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