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폭염은 사람에게만 힘든 건 아니었다. 아무리 물을 대도 농작물은 말라 비틀고, 닭들은 더위에 죽어 나갔다. 재해와 재난이 작고 약한 존재에게 먼저 가 닿는다고 치면 사람의 순서는 제일 앞자리가 아닐 수도 있다. 사람들의 자리도 각자 다르니, 선풍기 하나로 버텨야 하는 가난은 전기료를 걱정하면서도 에어컨을 켤 수는 있던 더위와는 달랐을 것이다.
둥치 큰 참나무가 ‘고주박’이 되기까지 겪어야 했던 폭염과 폭풍우와 혹한의 시간이 있다. 지금은 비록 죽은 그루터기라 해도 그 오랜 시간을 너끈히 견뎌내고, 다른 생명까지 품고 길러냈다. 그래도 이제는 썩은 밑동만 남았으니 생명의 시간은 끝난 듯 보였는데 산그늘의 품에서 고주박은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운지버섯(구름버섯)이 층층이 피어난 모양을 보고 ‘구름탑’이라 부르기만 했다면 고주박의 새로운 탄생이 그리 큰 감흥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 같다. ‘십구 층’이기에, ‘십구 층 구름탑’이라 불렀기에 고주박의 존재는 장엄한 빛을 띠게 된다. 숫자 9는 완전수 3이 3번 반복된, 가장 크고 가장 많은, 가장 끝의 수이다. ‘십구 층 구름탑’인 고주박은 죽었으나 죽지 않았고, 땅에 박혀 있으나 땅에 묶여 있지 않다. 하늘의 구름에 닿을 만큼 높고 높은 탑으로 우뚝 서 있다.
구름탑에서 문득, 올 여름의 폭염마저 헤치며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쓸쓸하지만 굳은 뜻이 공중에서 울리고 있는 점이 비슷하기 때문일까.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이 서울 양천구 목동의 75미터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올라간 지 이제 곧 300일이 되어간다.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김재주 전 지부장이 전주시청 앞 20미터 조명탑에 오른 지도 350일이 넘었다. 50도에 육박하는 폭염을 겪은 그들이, 폭염만큼 혹독할 것이라는 올 겨울 한파만큼은 제발 겪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곧 가을이다. 이 시집 ‘아주 특별한 손님’은 가을에 가깝다. 화려하고 풍성한 가을이 아니라 쓸쓸함이 깊이를 만드는 가을이다. 깊어서 쓸쓸하고, 쓸쓸해서 깊어지지만 결코 홀로 있지는 않다.
“어이 파고들었는지/바늘가시에 찔리지 않고//어디로 들어왔는지/단단한 껍질 구멍도 없이//알밤 속에 잠든/요 작고 여린 아기 벌레//밤알이 설 때부터 이미/벌레 알일 때부터 이미/알밤이 거두어 주었다네.//가시 뭉치로 지켜 주고/단단한 가죽옷 속/보드라운 안감 털로 보듬어/엄마처럼 먹이고 있었다네.”(‘밤벌레’ 전문)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ㆍ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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