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짜오! 베트남] “축구가 국력이다” 열광하며 하나되는 베트남 국민

입력
2018.08.29 16:29
수정
2018.09.06 13:38
17면
0 0

<49> 축구의 나라

# A매치 처음 치른 1991년 이후

27년간 감독 27명 국가대표 맡아

박항서까지 14명은 외국인 감독

# 축구 뿐 아닌 다른 스포츠서도

외국인 지도자 수혈해 메달 결실

“스포츠로 국민통합 효과 충분”

베트남이 시리아를 꺾고 4강에 오른 27일 늦은 오후 베트남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자축하고 있다.
베트남이 시리아를 꺾고 4강에 오른 27일 늦은 오후 베트남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자축하고 있다.

‘축구의 나라’ 순위에서 둘째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베트남에서는 축구가 인기가 높다. 지난 1월 중국에서 열린 아시안챔피언스리그(AFC) 23세 이하(U-23) 대회(준우승) 때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베트남 국민이 열광하는 모습에서 보듯 모든 종목을 통틀어 축구는 베트남의 가장 대중적 스포츠다. 그 배경에는 이 경기를 양분으로 삼아 성행하는 도박 등의 문제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한국의 조기축구처럼 축구가 저변에 퍼져 있고 자국팀이 출전하는 경기가 있는 날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TV앞에 앉거나 길거리 응원에 나선다.

온 국민이 감독

국민의 높은 관심은 감독과 선수들에게 기본적으로 큰 힘이 되지만, 동시에 큰 부담이 된다. 특히 감독 선임과 선수 선발을 맡고 있는 베트남축구협회(VFF)의 의사 결정도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1975년 통일 이후 베트남이 A매치(국가대표팀 간 경기)를 처음 치른 것은 1991년. 이후 지금까지 27년 동안 27명의 감독이 팀을 맡았다. 평균 1년에 1명꼴이지만 1년을 채우지 못한 감독들이 수두룩하다. 외국인 감독 중에서는 2008년 4월부터 2011년 3월까지 3년 동안 재임한 엔리크 칼리스토(포르투갈) 감독이 있지만, 그도 2002년 첫 선임됐을 때에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해 4개월 만에 물러나야 했다. 칼리스토 감독에 이어 2011년 팀을 맡은 독일 팔코 감독도 동남아시아(SEA)게임과 U-23대회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했는데, 팬들의 성화로 베트남축구협회는 약 10만달러의 위약금을 물고 7개월 만에 계약을 파기했다.

지난해 8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SEA 게임에서는 팀이 4강 진출에 실패하자 후 탕 국가대표팀 감독이 선임 1년5개월 만에 경질됐다. 하지만 1년5개월 재임은 그나마 베트남인 감독 중에서는 최장 기록이었다. 박항서 감독은 그로부터 한 달 뒤 2년 임기의 감독으로 선임됐다. 탕 감독은 현재 호찌민FC를 이끌면서 재기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포츠로 국력 과시

과거 한국도 그랬지만, 베트남 축구에는 외국인 감독이 많다. 박항서 감독을 포함, 지금까지 축구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27명 감독 중 14명(재선임 포함)이 외국인이다.

축구뿐만 아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 베트남이 참가한 32개 종목 중 절반인 16개 종목에 21명의 외국인 감독 또는 코치가 포진해 있다. 축구 등 일부 종목을 뺀 많은 종목의 협회장들이 감독 타이틀을 달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코치들을 실질적인 감독으로 볼 수 있고, 이 경우 외국인들이 16개 종목을 이끄는 셈이 된다. 한국인은 축구와 사격(박충건), 태권도(김길태), 펜싱(신무엽), 양궁(김선빈), 골프(박지운) 등 모두 8개 종목에서 베트남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박충건(52) 베트남 사격 국가대표팀 감독은 “베트남 정부는 해외 스포츠대회를 통해 국민에게 자긍심을 심고, 국민 통합을 도모하고 있다”며 “국제 대회 호성적을 경제성장의 동력으로도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응우옌 쑤언 푹 총리가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이 선전할 때마다 선수들과 감독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격려 치하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중국 프랑스 미국을 차례로 물리치고 43년 전 통일을 이뤘지만, 베트남은 아직 무력 통일의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인데 스포츠를 통해 국가 통합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박 감독은 “스포츠가 유발하는 국민 통합 효과를 따진다면, 높은 임금을 주고 외국인 감독, 코치를 선임한 효과는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외국 감독의 힘

실제 이 같은 투자 결실은 축구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에서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박충건 감독이 이끄는 사격대표팀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이미 신인들이 2개(10m 공기권총 믹스ㆍ러링 타깃 부문)의 메달을 땄다. 박 감독은 “베트남 사격이 세대교체기에 있고, 동메달이긴 하지만 젊은 선수들이 메달권에 올랐다”며 “미래가 아주 밝다”고 평가했다. 박 감독은 2016년 브라질 리우 올림픽에서 남자사격 쑤언 빈 선수를 지도, 베트남에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안겼다.

특히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이전에 범접하지 못했던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 베트남 스포츠의 앞날을 한층 밝혔다. 아시안게임 육상종목으로는 처음으로 여자멀리뛰기에서 부 틴 터 타오 선수가 금메달을 땄고, 조정에서도 처음으로 베트남 팀이 금을 캤다. 둘 모두 외국인 코치가 조연하고 있는 종목이다.

박항서 감독이 지난 1월 U-23 대회에서 파란을 일으키자 베트남 언론들은 전임자인 후 탕 감독이 같은 선수들을 이끌고 SEA게임 4강 진출에 실패했던 사실과 비교하며 박 감독의 리더십을 극찬한 바 있다. ‘감독 하나 바꾸었을 뿐인데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냐’는 것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현지 한 매체의 스포츠전문기자 T(31)씨는 “이전 감독들이 키워 놓은 선수들이 결실을 맺을 즈음 지휘봉을 잡은 박 감독에 대해 ‘행운의 감독’이라는 평가도 있다”며 “하지만 선수들에게 감동을 주고, 더 큰 힘을 내게 한 박 감독의 리더십은 예전 베트남에서 활동한 외국인 감독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강력한 힘”이라고 말했다.

호찌민=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