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 “金, 비핵화협상 무산 경고”
WP “트럼프, 北 비밀 편지 읽은 후
폼페이오 방북 하루만에 취소”
볼턴 등 종전선언에 반대 입장
김정은 긍정적인 응답 없을 땐
비핵화 교착 국면 장기화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계획을 하루 만에 전격 취소한 것은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적대적 편지 때문이었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27일(현지시간) 전했다. 북한이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목전에 뒀는데도 미국의 태도를 강하게 비난한 게 방북 취소의 결정적 배경이 됐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이번 방북에서 핵 프로그램 신고와 종전선언을 교환하는 협상을 벌일 계획이었으나, 북한의 완강한 태도로 종전선언에 거부감을 가진 대북 강경파들의 입김이 더욱 커지게 됐다. 이 같은 교착 국면이 지속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강경파에게 힘을 실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WP 칼럼니스트인 조시 로긴은 이날 칼럼에서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 계획을 발표한 다음 날인 24일 오전 김 부위원장으로부터 비밀 편지를 받아 이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여준 사실을 2명의 행정부 고위 관계자로부터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편지의 정확한 메시지는 확실치 않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 취소를 결정할 만큼 충분히 적대적이었다고 로긴은 전했다. 편지에는 그간 미국의 제재 압박에 대해 “강도적”이라고 비난해왔던 북한의 주장이 그대로 담긴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미국으로선 종전선언 카드를 내놓더라도 북한으로부터 완전한 핵 프로그램 신고라는 응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CNN은 28일 3명의 소식통을 이용해 김 부위원장이 이 편지에서 비핵화 협상이 “다시 위기에 처해 있으며 무산(fall apart)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이 편지에서 김정은 정권은 “평화협정에 서명하기 위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미국은 아직도 (북한의) 기대에 부응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느낀다면서 이 때문에 과정이 진전될 수 없었다고 밝혔다고 이 소식통들은 CNN에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편지를 전달 받은 후 폼페이오 장관을 비롯해 스티브 비건 신임 대북정책특별대표, 성김 주 필리핀 대사, 앤드류 김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 등 대북 정책 핵심 담당자들과 회의를 가진 뒤 트위터를 통해 방북 취소를 발표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취소로 비핵화 협상의 교착 국면은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북한은 종전선언을 통해 미국이 먼저 관계 개선의 조치를 취할 것을 주장하고 있지만 종전 선언에 반대해온 강경파들의 입지만 더욱 강화시켜주는 격이 됐기 때문이다. 폼페이오 장관의 이번 방북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과 자산을 신고하고 미국은 종전선언을 하는 ‘조치 대 조치’ 방안을 협상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현 시점에서 이뤄지는 종전선언은 반대해왔다고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이 말했다고 로긴은 전했다. 국무부는 종전선언이 평화협정에 앞선 정치적 조치일 뿐이라는 입장이지만, 볼턴 보좌관은 미국의 어떤 양보도 약하다는 신호로 비춰져 결과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는 것이다. 매티스 장관도 면밀한 고려 없이 종전선언에 응하는 것은 한미 양국의 군사적 대비태세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현재 북한의 핵 프로그램 활동을 두고서도 정부 내 각 기관들 간에 논쟁이 있으며 평가도 엇갈린다고 로긴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이 강경파들의 반대에도 종전선언 카드를 쥐고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끌어내기 위해 방북을 추진했지만, 북한이 미국을 강하게 성토하면서 종전선언 카드가 더욱 멀어지게 된 셈이다. 로긴은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통해 열어 놓은 북한과의 외교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평양이 긍정적으로 응답하지 않으면 대북 압박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참모들의 편을 들지 않을 수 없다”며 “폼페이오와 비건이 진전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지 못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수 주 내에 북한과 한국 정부 모두를 긴장하게 만들 강력한 조치를 승인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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