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사망한 존 매케인 미국 공화당 연방 상원의원(애리조나)을 향한 추모가 이어진 가운데, 매케인 의원과 관계가 좋지 않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고인에 대한 은근한 불편함을 드러냈다. 미리 준비된 백악관 명의의 공식 추모 성명을 발표하지 못하게 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백악관 성조기도 갑자기 통상 게양 조치하는 등의 조치로 정치적 논란을 불렀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26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미리 준비돼 있던 매케인 의원에 대한 백악관 명의의 공식 추모 성명 발표를 막았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가 인용한 백악관의 보좌관은 “매케인 의원의 임종 전부터 그를 영웅으로 칭송하는 내용의 초기 성명이 준비돼 있었고, 세라 허커비 샌더스 대변인과 존 켈리 비서실장 등이 성명 발표를 추진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짧은 트윗으로 추모를 대신하길 원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매케인 의원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트위터를 통해 고인의 가족에게 “깊은 연민과 존경을 표시한다”라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이는 매케인 의원 본인에 대한 직접적인 추모는 아닌 셈이다. 27일 멕시코와의 무역협상 타결 소식을 발표하고,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공개 산책을 하는 내내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매케인 의원의 사망 소식에 관한 기자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침묵으로 일관했다. 여기에 이날 오전에는 전날까지만 해도 조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반게양 상태로 걸려 있던 백악관의 성조기가 평상시대로 게양된 것이 알려지며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와 같은 행보에 공화당 관계자조차 불만을 드러냈다. 트럼프 법무팀 대변인을 지낸 마크 코럴로는 “미국의 영웅이 세상을 떠난 이런 시기에 대통령에게 더 많은 것을 기대했다”라고 말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대변인을 지낸 아리 플라이셔는 “특히 깃발 게양 문제는 심각하다”라면서 “국민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의례적이고 전통적인 행위는 정책이나 개인적인 차이가 있더라도 당연히 지켜야 할 선”이라고 주장했다.
논란이 커지자 27일 오후 백악관은 깃발을 다시 반게양 상태로 돌렸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뒤늦게나마 “정책과 정치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미국에 대한 공헌을 존경한다”라고 직접 조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서 그는 자신이 백악관 성조기를 장례식이 예정된 9월 2일까지 조기로 게양하는 것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성명에서 매케인 의원의 관이 워싱턴 의사당에서 일반 공개되는 31일에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직접 추모 연설을 하고, 켈리 비서실장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을 정부 대표로 삼아 매케인 의원의 장례에 임하겠다고 발표했다. 결국 매케인 의원의 생전 의중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장례식에 직접 참석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매케인 의원 역시 죽기 전 남긴 공개 유언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겨냥하는 말을 남겼다. 릭 데이비스 대변인이 27일 기자회견에서 공개한 서신에서 매케인 의원은 “우리가 애국주의를 분열적인 적대심과 혼동하면 지구 곳곳에서 증오와 분노와 폭력을 낳게 되고 결국 우리의 위대함을 약화시킨다. 벽을 무너트리지 않고 벽의 뒤에 숨을 때, 세상을 변화시킨 우리의 위대한 이상을 믿지 않고 그 힘을 의심할 때 우리는 우리의 위대함을 약화시킨다”고 적었다. 이는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을 추구하고 특정 국가 이민 제한을 설정하는 등 과격한 대외 정책을 펼쳐 온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비판이다. 그간 매케인 의원과 트럼프 대통령이 충돌해 온 사안이기도 하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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