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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의 다시 광릉 숲에서] 상사화(相思花)가 그리운 것은

입력
2018.08.28 11:29
수정
2018.08.28 17:54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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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양형호
사진 양형호

이 여름 제가 마음을 많이 썼던 식물 중에 상사화가 있습니다. 상사화는 봄이 오면 싱싱하고 단단해 보이는 잎들이 무성하게 올라와 잎만으로도 꽃밭처럼 만들어 주었다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요. 여름이 무르익는가 싶으면 이내 쑥하고 꽃대를 올려 더없이 설레게 하는 연분홍빛 꽃송이들을 참으로 아름답고도 독특하게 피워냅니다. 상사화가 한창 피고 있을 즈음, 곁에서는 진노랑상사화나 붉노랑상사화가 다시 꽃대를 올립니다. 제가 가장 아끼는 수목원의 이즈음 풍경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올해는 이 상사화가 영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물도 따로 주고 정성을 쏟으니 풍성하진 않아도 꽃대들이 올라와 이내 꽃들을 피워내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태풍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며칠 비상 근무를 하였지요. 막상 무사히 지나고 안도하는 것도 잠시, 가뭄을 해소할 만큼 충분하지 않았던 강수량이 아쉽더라고요. 그러나 며칠 못 가 호우 특보가 내리면서 반전되었습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상사화 꽃대들은 빗줄기에 휘어져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무엇이든 모자라지도 지나치지도 않은 적절한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다시 느끼게 됩니다.

아시는 것처럼 상사화라는 애절한 이름은 꽃이 필 때 잎이 없고, 잎이 필 때 꽃이 없어 서로를 그리워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한 사찰에 편찮으신 아버지를 위해 탑돌이를 하러 온 아리따운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긴 스님이, 스님이라는 본분 때문에 혼자서 그 그리움을 감당하다가 결국 병들어 죽게 되자 그 자리에서 외롭게 꽃대를 올려 피어난 꽃이 바로 상사화라는 전설이 전해질 정도이지요. 또 유난히 사찰에 상사화가 많은 이유를 두고 수도에 방해가 되지 않게 결국은 홀로 사는 삶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저는 그간 인연을 맺고 그리워하는 남자와 여자는 식물의 잎과 꽃이 아니라 수술과 암술 혹은 수꽃과 암꽃에 비유되니 이 이름의 유래에는 모순이 있으며, 사찰에 상사화가 많은 이유는 이 식물의 알뿌리에 있는 성분이 승복이나 불경을 염색하는 데 도움을 주며 오래도록 상하지 않게 하여 유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해왔습니다.

그러나 이 여름 상사화 꽃을 기다리면서 그저 인연을 맺기 위한 암수의 만남보다 더 근본적인 것들이 많이 있다 싶었습니다. 올해처럼 충분한 물도 있고요, 비옥한 땅, 충분한 햇볕과 적절한 그늘도 필요하지요. 봄에 잎들이 열심히 만들어 놓았던 양분을 알뿌리에 비축해 두었다가 그 힘으로 꽃대를 올리는 것이니, 어느 계절 어느 요소 하나 꽃이 피는 데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더욱 마음에 짠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는 이 상사화는 결실을 맺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상사화는 우리나라에서 자생지가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꽃들은 원예화된 것으로 알뿌리를 쪼개어 포기를 만들어 심는 것이지요. 정상적인 인연 만들기를 할 수 없는 개체들이니 알고 보면 정말 외로운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상사화 집안의 식구들, 앞에 말씀드린 진노랑상사화나 붉노랑상사화 말고도 위도상사화, 제주상사화, 백양꽃 등은 결실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오늘 만나고 있는 상사화가 진짜 그리워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측이 가능한 지구의 환경? 인연을 맺고 살아갈 수 있는 제 고향? 새로운 인연을 맺을 가능성이 열려있는 이 땅의 다른 상사화 집안 식구들? 확실한 것은 어느 하나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헤어진 가족, 못다 한 공부, 떠나온 고향,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 문득 곁에 있는 것들이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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