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가 선보인, 르노의 대표 모델 클리오와 함께 강원도 태백의 산길을 달렸다.
우리에게 소형차는 늘 효율성의 대상이었다. 그 효율성이 연료 효율성이든 유지비용의 효율성이든 '숫자로 표현되는 것'에 발목 잡혀 있는 건 같았다. 그런 상황에 데뷔한 르노의 해치백, 클리오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르노 클리오는 효율성이라는 요소는 기본으로 전제하되 '달리는 즐거움' 또한 강조하고 있다.
강원도 태백에서 만난 르노 클리오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도로를 내달렸다. 이른 아침 시작된 주행은 클리오의 내공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내리막 구간에서는 강한 제동으로 속도를 낮추고 빠르게 스티어링 휠을 돌려 연이어 굽이치는 코너를 파고들었고 오르막 구간에서는 있는 힘껏 RPM을 끌어 올리며 거슬러 올랐다.
그리고 한참을 달린 후 잠시 차량을 세우고 그 경험과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태백에서 만난 와인딩 코스
르노 클리오가 달린 무대는 정말 오랜만에 찾은 강원도 태백이었다. 국내 모터스포츠 대회의 간판 주자인 '슈퍼레이스 챔피언십'이 태백 레이싱파크에서 열릴 때는 정말 자주 찾았던 곳이었지만 태백 레이싱파크의 낙후된 시설이나 서킷 운영 등에 관련된 여러 문제 그리고 국내 모터스포츠의 주 무대가 영암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과 인제스피디움 그리고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로 완전히 옮겨지며 이제는 '잊혀진 곳'이 되었다. 그래서 그럴까? 강원도 태백의 산길을 달리며 좋았거나 혹은 나빴던 과거의 기록이 새록새록 피어났다.
90마력의 디젤 해치백
솔직히 말해 본격적인 달리기를 앞두고 '과연 클리오로 달리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르노 클리오의 보닛 아래에는 르노삼성 QM3와 같은 1.5L dCi 디젤 엔진과 6단 EDC 변속기의 조합이 자리한다. 이를 통해 낼 수 있는 출력은 90마력과 22.4kg.m에 불과하다. 게다가 디젤 엔진이라 RPM의 가용 범위가 제한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부분을 클리오의 아쉬움으로 지적한다. 동의는 한다. 디젤 엔진이 아니라 차라리 가솔린 엔진이 탑재된, 그리고 출력이 조금 더 높은 모델을 들여왔다면 더 즐거운 마음으로 달리기에 임할 수 있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르노 클리오를 들여온 입장에서도 아마 여러 조건을 고민한 후에 국내 도입 사양을 결정했을 것이다.
달리기에 앞서 생각해야 할 것들
와인딩이라고 한다면 역시 연이은 코너와 오르막과 내리막을 오가는 다이내믹한 도로를 달리는 즐거움에 있다. 그리고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안전하게 즐기는 것이다. 코너를 공략한다고 중앙차선을 넘어가거나 앞서 달리는 차량으로 인해 주행 페이스가 떨어진다고 무리한 추월을 하는 멍청한 짓이자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이에 평소보다 조금 더 이른 시간에 클리오와 함께 태백의 산길을 먼저 낮은 속도로 둘러보았다. 도로의 상황이나 주의해야 할 점을 파악하고 오가는 차량이 어느 정도 있는지 살펴보기 위함이다. 사람이 많이 찾지 않는 도로라 그런지 일부 구간의 관리 상태가 좋지 않음을 인지하고, 해당 지역을 지날 때 유의할 필요가 있음을 숙지했다.
그렇게 주변 상황을 충분히 둘러본 후 본격적인 달리기를 시작했다.
90마력으로 할 수 있는 것
안전지대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기어 레버를 옮기고 엑셀레이터 페달을 밟으며 차선 안쪽으로 합류했다.
클리오의 출력이 강력하진 않지만 차량의 무게 자체가 가벼운 편이라 제법 경쾌한 템포로 가속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른 아침, 강원도 태백이라는 지리적 특성, 그리고 해발 1,000m의 높이라는 환경 덕에 타이어의 열이 제대로 오르지 않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으며 가속 페이스를 조율했다.
단도직입적으로 경쟁 차량, 혹은 앞서 달리는 차량을 따르고 있다면 90마력과 22.4kg.m의 토크가 아쉬울 수 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안전한 달리기를 추구하는 입장에서 출력이 높고 낮음은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다. 그리고 혼자서 달리며 차량의 움직임에 집중하기엔 어쩌면 더 적당한 출력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리막 구간에서는 출력 이상의 가속력이 발산되고, 오르막 구간에서는 조금은 답답하지만 디젤 특유의 토크를 내며 산길을 거슬러 오를 수 있었다. 6단 EDC가 빠르게 알맞은 기어를 찾아주는 덕에 큰 답답함은 없지만 확실히 RPM의 사용 범위가 다소 제한적이다 보니 약간의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출력을 압도하는 하체의 매력
코너를 앞둔 상황, 충분한 거리에서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 속도를 낮췄다.
차량의 웜업이 끝나지 않았고 이른 아침이라는 특성 상 몸의 감각이 100%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르노 클리오는 의외로 준비가 끝난 것처럼 즉각적인 제동력으로 주행 속도를 빠르게 줄였다. 감속이 생각보다 빨라 브레이크 페달에 더한 힘을 조금 풀며 코너를 향한 진입 각도를 조율하고 그대로 코너의 흐름에 맞춰 스티어링 휠을 조작했다.
굽이치는 코너지만 르노 클리오는 크게 불안한 모습이 없다. 탄탄한 차체와 경쾌하게 무게 중심을 옮기는 특성으로 리드미컬하게 코너를 파고들며 즐거움을 연출했다. 90마력의 해치백으로 가속력을 즐길 필요는 없다. 출력을 탓하며 답답함을 토로하는 사이에 되려 클리오가 가장 잘하는 '코너링에서의 즐거움'을 찾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다.
또 다시 코너가 나왔다. 이번에는 내리막 구간에서 연이어 이어지는 연속 코너다. 체격이 크거나 휠베이스가 긴 차량의 경우 조금 더 제동을 하고 안정적인 드라이빙 라인을 그려야 할 상황이지만 클리오에게 그런 소극적인 자세는 필요 없었다. 동급의 모델 대비 낮은 전고, 무게중심은 물론이고 특유의 짧은 휠베이스를 활용해 연이은 코너를 매섭게 파고들고, 또 반대로 방향을 틀며 연속 코너를 경쾌하게 통과했다.
네 바퀴의 타이어가 열이 조금 올랐는지 조금 더 끈적함이 느껴진다. 유럽에서는 사양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미쉐린 스포츠 타이어가 주로 사용되는데 국내에서는 넥센타이어의 스포츠 타이어 엔페라가 장착되어 타이어의 접지력을 활용해 노면을 움켜쥐며 코너를 타는 즐거움도 충분했다. 다만 일전에 경험한 우천 상황에서는 그 안정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을 느껴 유의할 필요가 있다.
구상했던 와인딩 코스를 몇 차례 오간 후 주행 페이스를 조금 더 높여 다시 달리며 차량의 움직임을 살펴보았다. 여전히 출력을 이기는 하체가 안정적이고 내공 높은 주행을 과시했다. 이러한 기본기라면 특별한 튜닝이 없더라도 원 메이크 레이스를 운영하더라도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단단한 하체보다는 포용력을 높이며 부드러운 성향의 하체를 선호하는 편이라 주행을 하면서 약간의 부담이 쌓였고, 차량을 구매한다면 서스펜션을 조금 더 무르되 그 한계를 깊게 가져가는 방향으로 튜닝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이 부분은 전형적인 개인의 취향이지 결코 클리오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멈춰야 보였던 것들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도로 한켠의 안전지대에 차량을 세웠다. 도어를 열고 실내 공간을 잠시 살펴보니 아쉬운 점이 보였다. 주행에 대한 부분으로 한정한다면 아무래도 작은 공간 내에서 최적의 실용성을 확보하기 위해 시트 포지션이 높아진 점이 가장 큰 단점으로 보였다. 조금 더 낮은 시트 포지션이 마련되었다면 달리는 즐거움이 더 즐거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변속기의 선택도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국내 대다수의 소비자들을 고려한다면 6단 EDC가 당연한 선택이지만 달리기의 즐거움, 그리고 조금 더 리드미컬하고 원초적인 즐거움을 강조한다면 역시 수동 변속기가 장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국내에 판매되는 르노 클리오는 17인치 투톤 알로이 휠이 장착되어 있는데 산길을 달리면서 '굳이 이렇게 큰 휠과 타이어를 장착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휠과 타이어에서 무게를 조금 더 줄인다면 가속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체감적인 개선의 폭이 더 크기 때문에 15인치 혹은 16인치 휠과 타이어로도 충분한 즐거움과 완성도 높은 주행을 구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힘으로 달리지 않는 존재, 르노 클리오
뛰어난 가속력을 내는 방법은 쉽다. 그리고 이를 다루는 것도 쉬운 편이다. 하지만 제한된 출력을 가진 차량으로 완성도 높은 달리기를 구현하는 건 자동차는 물론이고 운전자에게도 큰 숙제와 같다.
그런 의미에서 르노 클리오는 '자동차가 해결해야 할 과제'의 상당 부분을 해결한 차량이다. 이제 남은 건 운전자다. 운전자가 배우고 숙제할 수록 더 즐겁고 빠르게 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재미의 가치는 '타보지 않으면 모를 수준'에 이르고 있다.
한국일보 모클팀 - 김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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