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테러-진압작전 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된 체첸 과격파의 ‘베슬란(Beslan) 인질 테러 참사’가 2004년 9월 1일 일어났다. 사흘째인 3일 시작된 의문의 폭발사고와 화재, 테러범들과 러시아 진압부대의 총격전으로 1,100여 명 인질 가운데 334명이 숨졌고, 그 중 184명이 어린이였다. 참사 이후 체첸 반군에 대한 국내외 여론이 악화했고, 러시아 역시 참사 책임을 둘러싸고 호된 비난을 받았다.
9월 1일 그루지아 국경의 러시아 북오세티아 자치공화국 공립학교 개학식이 열렸다. 학교는 교사, 학생과 학부모들로 가득했다. 중무장한 32명의 테러범이 들이닥친 건 오전 9시 15분. 그들은 인질들을 체육관에 몰아넣고, 다량의 폭약을 설치했다. 테러를 주도한 집단은 체첸 반군의 아슬란 마스하도프 휘하의 온건 민족주의 분파가 아닌 이슬람 와하브파(과격원리주의집단)의 샤밀 바사예프의 무리였다. 그들은 체첸 주둔 러시아군의 즉각 철수와 완전 독립 보장을 요구했다. 1991년 소비에트 붕괴 이후 잠시 독립했던 체첸은 석유를 탐낸 옐친의 러시아와 1차 전쟁(1991~1996)을 치렀고, 휴전 기간(5년)도 덜 지나 99년 2차전쟁을 벌였다. 전쟁이라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체첸의 테러와 러시아 보복공격의 반복이었다. 그 전쟁을 주도한 집단이 와하브파였다.
3일 오후 1시 무렵의 폭발사고가 테러범들의 실수 탓인지, 진압군의 작전 탓인지는 불확실하다. 그 사고로 체육관 지붕 일부가 붕괴됐고, 불이 났다. 그 혼란을 틈타 도피하려던 인질들에게 테러범들이 총격을 가했다. 이어 전차와 무장 헬기까지 동원된 무차별 진압작전이 시작됐다. 북오세티아는 민간인 총기 소지가 합법이다. 가족을 인질로 붙잡힌 베슬란 주민들도 다수가 총을 들고 현장 주변에 머물다 그 충돌에 가세했다. 사망자 외에 인질 대다수가 중경상을 입었고, 진압부대원과 경찰, 의료인 등도 20명이 숨졌다. 인질범은 1명을 빼고 전원 사살됐다.
유럽인권재판소는 2017년 4월, 러시아 당국이 체첸 반군의 학교시설 테러공격에 대한 상세한 첩보를 사전에 입수하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과잉 진압작전으로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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