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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루비 리지 사건과 미국 민병대(8.30)

입력
2018.08.3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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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리지 사건의 희생자 비키 위버의 생전 모습. wikipedia.org
루비리지 사건의 희생자 비키 위버의 생전 모습. wikipedia.org

1992년 8월 미국 아이다호주 바운더리 카운티 루비 리지의 백인 우월주의자 랜디 위버(Randy Weaver) 일가와 연방수사국(FBI) 및 연방보안군이 만 열흘 동안 대치하며 총격전까지 벌인 ’루비 리지(Ruby Ridge) 사건‘이 일어났다. 엄밀히 말하면 FBI의, 저격수까지 동원한 진압이었다. 그 일로 위버의 43세 아내 비키(Vicky)와 14세 아들, 연방보안관 한 명이 숨졌고 일가의 반려견 ‘스트라이커(Striker)’가 죽었다. 연방 권력의 명백한 과잉 진압을 계기로 남부 농촌 등 민병대 전통이 강한 지역에서 신흥 민병대 조직이 잇달아 만들어졌다. 다수가 무정부주의자와 반연방주의자, 차별주의자 조직이었다.

위버 일가가 숲속에 터를 잡은 건 1983년이었다. 별 말썽은 없었다. 미 육군 공병대 출신인 위버가 인근 헤이든(Hayden) 레이크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백인 우월주의 단체 ‘아리안 네이션스(Aryan Nations)’ 모임에 자주 들락거리긴 했지만 정회원은 아니었다. 89년 10월, 위버가 단체 회원으로 잠입한 주류담배총기관리국 정보원에게 불법 개조한 쇼트건 2정을 팔았다. 그는 91년 기소돼 불구속 재판을 받게 됐지만 법원에 출두하지 않았다. 법원 측이 재판 기일을 잘못 통보했다는 설도 있다.

당시 연방보안관실은, 위버 ‘일당’의 인원수와 무장 정도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92년 8월 21일 6명의 보안관이 위버의 집 주변을 탐색하다 개에게 들켜 몸싸움 끝에 총을 쏘았고, 함께 있던 아들의 응사에 그와 보안관 한 명이 숨졌다. FBI 진압작전이 시작됐다. 저격수는 위버를 쏴 부상을 입히고, 집으로 피신하던 그를 겨냥해 쏜 총에 갓난아이를 안고 문 뒤에 서 있던 아내가 숨졌다.

위버 일가는 어울려 지내던 우월주의자 회원들의 중재로 8월 30일 투항했지만, 인터넷을 통해 전 과정이 매일 생중계됐고, 그 대치는 반연방ㆍ무정부주의자들에 의해 영웅적 투쟁으로 미화됐다. 생존한 위버와 세 딸은 연방정부를 상대로 2억달러 배상 소송을 청구했고, 95년 8월 정부가 위버에게 10만 달러, 세 딸에게 각 100만달러를 배상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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