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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외수정 한번에 300만원 훌쩍… 난임, 의료비 폭탄에 시름

입력
2018.08.28 04:40
수정
2018.08.28 11:0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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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쉬운 건강보험 지원 

 시험관 7회 등 10회만 건보 적용 

 한방 난임 시술은 전액 본인 부담 

 민간 실손 보험도 보장 안 해 줘 

 # 커지는 경제적 고통 

 어렵게 임신해도 절대안정 필수 

 원치 않게 직장 그만두는 경우 많아 

 일부 기업 난임 휴직제 ‘그림의 떡’ 

22만명에 이르는 난임 부부들은 여전히 경제적, 정서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23일 난임 당사자들이 서울 을지로 국립중앙의료원 중앙난임ㆍ우울증상담센터를 찾고 있다. 배우한 기자
22만명에 이르는 난임 부부들은 여전히 경제적, 정서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23일 난임 당사자들이 서울 을지로 국립중앙의료원 중앙난임ㆍ우울증상담센터를 찾고 있다. 배우한 기자

오민아(39ㆍ이하 난임 당사자 이름은 전부 가명)씨 부부는 결혼 1년차인 지난해 10월 난임 판정을 받은 뒤 신선배아 시술을 두 번 받았는데 의료비로 벌써 760만원을 썼다. 지출 내역은 ▦신선배아 체외수정 난임 검사 비용 70만원 ▦시험관 시술 2회 300만원 ▦황체호르몬제제(질정제) 등 약값 30만원 등. 오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의원에서 수정란 착상에 도움이 된다는 착상탕, 착상침 등을 처방 받았는데 이 비용도 200만원 넘게 들었다”고 전했다. 한방 난임 시술은 현재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올해 1~6월 난임 부부가 시술을 받아 낳은 아이 수는 1만654명. 이 기간 전체 출생아 17만1,600여명의 6.2%에 해당하는 적잖은 비율이다. 가임기(15~49세) 부부 중 난임을 경험한 비율이 13.2%에 달한다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5년 조사 결과도 있다. 부부 100쌍 중 13쌍은 난임이며, 국내 신생아 100명 중 6명은 이런 난임 부부가 낳았다는 뜻이다. 만혼(晩婚)이 대세를 이루며 난임 문제는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난임이 가정 내 문제를 넘어 초(超)저출산 시대에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가 된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이런저런 정부 지원 제도가 생겼지만 난임의 그늘은 여전히 짙다. 지난해 처음으로 난임 시술에 건강보험이 적용됐지만 오씨 부부처럼 병원비 부담이 여전히 가계를 위협한다. 시술의 스트레스와 주변의 배려심 없는 발언은 우울증의 늪으로 이들을 밀어 넣기 일쑤다. 이들은 말한다. “아이 한번 가져보겠다고 미친 듯이 노력하는 간절한 난임 환자들을 두 번 울리지 말아 달라”고.

체외수정 두 번 받은 지출내역. 신동준 기자
체외수정 두 번 받은 지출내역. 신동준 기자

 시술비 마련하려 치료 접고 알바 취직 

지난해 10월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됐지만 난임 의료비는 여전히 비싸다. 2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신선배아를 활용하는 체외수정(시험관)은 1회 시술 비용만 평균 본인 부담금이 102만~114만원에 이른다. 동결배아 체외수정과 인공수정도 평균 본인 부담금이 각각 44만원, 22만원이다. 더구나 난임 검진비와 약값 등은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비급여가 많다. 신선배아 체외수정을 기준으로 1회 전체 의료비가 많게는 300만원에 이른다.

기준중위소득 130% 이하 가구에는 정부가 신선배아 시술 4회까지 1회 최대 50만원씩 지원하는 제도가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반응이 많다. 오씨는 “첫번째 시술 때는 지원금 50만원을 받을 수 있는 소득 기준에 해당했는데, 일부 비급여 병원비와 약제에만 지원금을 사용하도록 제한하고 있어 10만원밖에 쓰지 못했다”면서 “그 돈으로 건강보험 본인부담 비율(현재 30%)을 낮춰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난임 시술비는 정해진 건강보험 적용 횟수를 초과하면 그 때부터 시술비는 전액 본인 부담이다. 시험관 시술은 7회(신선배아 4회, 동결배아 3회), 인공수정은 3회 등 총 10회까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부부 중 여성의 나이가 44세가 넘어도 건강보험 혜택을 못 받는다. 난임은 민간 실손보험조차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난임 부부들이 10번의 건강보험 한도를 모두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혼 3년차인 지난해 6월 난임 진단을 받은 문지원(29)씨는 다낭성난소낭종이란 질환을 앓고 있다. 그래서 난자를 채취하기 위해 배란유도제를 사용하면 의도와 달리 난자가 여러 개씩 배출된다. 난자를 하나씩만 이식하는 신선배아 시술은 불가능하고, 난자 여러 개를 얼렸다가 이중 몇 개씩을 해동해 이식하는 동결배아 시술만 받을 수 있다. 문씨는 동결배아 시술을 건강보험 한도인 3번까지 다 받았지만 잘 안 됐다. 신선배아 시술 한도는 문씨에게는 무의미하다. 결국 문씨는 앞으로 시술비 전액을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처지다. 문씨는 비급여 시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단 치료를 접고 지난 6월부터 경기도의 한 이벤트 업체에 야외 행사요원으로 취업한 상태다. 문씨의 하소연은 충분히 수긍할만했다. “사람 자궁 상태에 따라 시험관 진행과정이 모두 다 다른데, 신선배아 4회, 동결배아 3회로 칸막이를 쳐 둔 탁상행정의 결과로 피해를 보고 있어요. 난임 부부별로 처한 상황에 맞게 돈을 쓸 수 있도록 난임시술에 지원할 예산을 ‘아이행복카드’ 같은 바우처 형태로 주면 어떨까요.”

자궁선근증 수술 후유증으로 자연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은 허가영(41)씨는 반대로 신선배아 시술만 가능하다. 고령 등으로 난자가 한번에 한 개씩만 배란돼 여분의 난자가 있어야 가능한 동결배아 시험관 시술은 받을 수 없다. 그러니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동결배아 시험관 시술 3회나, 인공수정 3회는 허씨에게는 허울좋은 지원에 불과하다. 마지막 건강보험 적용 시술인 4번째 신선배아 시험관 시술을 받고 있는 허씨 부부는 “정부가 첫째 아이를 가지기 전까지만이라도 횟수 제한 없이 건강보험을 지원해주면 저출산 해소에 즉각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한다”고 간절히 호소했다.

연도별 난임진단자 추이. 신동준 기자
연도별 난임진단자 추이. 신동준 기자
난임 부부가 낳은 출생아수. 신동준 기자
난임 부부가 낳은 출생아수. 신동준 기자

 

 직장ㆍ시술 병행 어려워 커지는 부담 

수시로 병원에 가야 하고, 어렵게 임신에 성공하면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는 난임의 특성상 여성이 원치 않게 직장을 그만 두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의료비 지출은 늘어나는데, 가계 소득은 줄어들어 경제적 부담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한지영(28)씨는 결혼 2년차인 올 4월 난임 진단을 받은 뒤 2차 시술을 준비 중이다. 한씨는 “시험관 시술을 할 때 한 달에 최소 4, 5번은 병원에 가야 하니 다니는 직장에도 사직서를 내고 준비를 했지만 1차(비용 189만원) 결과가 나빴다“며 “남편이 대기업에 다니긴 하지만 외벌이로는 경제적 부담이 커서 신선배아 시술에 건강보험 적용이 끝나는 4차 이후에 시술을 계속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주변에도 4차까지만 해보고 안 되면 ‘딩크족’(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 부부)으로 가겠다는 부부가 많다”고 전했다.

일부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은 ‘난임 휴직’ 제도를 둔 곳도 있지만, 나머지 직장인들은 휴직도 여의치 않다. 올해 5월29일부터는 연간 최대 3일 난임치료 휴가를 쓸 수 있게 제도가 마련되기는 했다. 하지만 실효성은 의문이다. 3일 중 하루만 유급이고 이틀은 무급인데 국내 직장인들이 주어진 유급 연차 휴가조차 절반(연차 사용률 52.3%ㆍ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조사 결과)밖에 쓰지 못하는 여건임을 감안하면 사용률이 그리 높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힘’ 아닌 ‘짐’ 주는 주변사람들 

난임은 정신적 고통도 안긴다. 스트레스와 자책감에서 시작해 ‘사람들에게 받는 상처나 피해의식→인간관계 단절→우울증’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2015년 난임 시술을 받은 여성 303명에게 가장 어려운 점을 묻자 ‘정신적 고통과 고립감’을 꼽은 비율이 41.0%로 ‘경제적 부담’(25.9%), ‘신체적으로 힘들어서’(24.6%) 등의 답변을 앞질렀다. 난임 여성 1,06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또 다른 보사연 조사에서는 난임 시술 기간 중 정신적 고통과 고립감, 우울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60%나 됐다.

주변 사람들이 ‘힘’보다는 ‘짐’이 될 때도 많다. 난임 치료 10년째인 김유나(36)씨는 예전과 달리 사람들과의 만남을 극도로 꺼린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으레 ‘결혼 했어요?’를 시작으로 ‘아이는 몇인가요’ ‘아이 낳아야죠’라고 물어요.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싫어서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을 피하게 되고, 염려와 관심이 부담스러워 지인들과도 거리를 두게 되더라고요.”

또래들과 공통 관심사가 점점 사라지는 것도 난임 부부들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2014년 난임 판정을 받은 유희경(36)씨는 “지인들은 육아 얘기를 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나는 내 일상만 얘기하게 된다“며 “친구들과 연락도 차차 끊게 되고 자립형 외톨이로 지내게 된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가족들이 상처를 주는 일도 흔하다. 김유나씨는 “이혼을 하려는 시동생 부부의 아들을 입양하는 게 어떠냐는 시부모님 제안을 받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고, 유희경씨는 “친언니가 나를 배려한다며 6개월까지 임신 사실을 숨긴 것에 되레 서운함을 느껴 말다툼을 했다가 감정 싸움으로 번져 1년 가까이 연락을 하지 않는다”고 털어 놨다.

난임이 결국엔 부부간 사랑을 식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소희 국립중앙의료원 중앙난임ㆍ우울증상담센터 부센터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기계적으로 진행되는 난임 시술 과정은 환자를 정서적으로 피폐하게 만든다”면서 “죄책감으로 시작해 우울감을 느끼고 서러움, 분노로까지 가는 환자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주변에서 돌잔치를 하면 연락을 해도 스트레스를 받고, 연락을 일부러 안 해도 섭섭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자격지심 비슷한 감정으로 대인 관계가 망가진다”며 “자연스런 애정에서 비롯돼야 할 부부 관계가 임신을 위한 과업이 되다 보니 부부 간의 애정이 식는 일도 잦다”고 전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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