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없이 내려진 휴교,휴원령
미취학아동 둔 부모들 대혼란
“자연재해 등 돌발상황 발생 땐
임시공휴일로 보육공백 대책을”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안 빗발
“태풍이 무사히 지나가서 다행이지만 아이 맡길 곳 없는 부모는 발만 동동 굴렀네요.”
경기 화성시에 사는 직장인 최모(40)씨는 제19호 태풍 ‘솔릭’이 한반도를 무사히 비켜간 24일에도 세살배기 딸을 맡길 곳이 없어 정신 없는 하루를 보냈다. 전날 휴원 공지에 따라 딸이 다니는 어린이집이 이날 하루 문을 닫았기 때문. 최씨는 “아이 맡길 곳을 찾지 못해 오전에는 아내가 아이와 함께 출근하고 점심시간에는 내가 회사로 아이를 데리고 왔다”며 “아이와 함께 하루 종일 회사에 있기가 눈치 보였다”고 말했다.
한반도를 강타할 것으로 예상됐던 ‘솔릭’이 예상과 달리 큰 피해를 입히지 않고 동해상으로 빠져나가면서 많은 이들이 안도했지만 미취학아동을 둔 부모들은 하루 종일 우왕좌왕했다. 휴교ㆍ휴원령에 맞벌이 부모를 위한 돌봄교실이 마련된 유치원, 초ㆍ중학교와 달리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동들은 돌봄 사각지대에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날 휴업한 전국 유치원ㆍ초ㆍ중ㆍ고교는 8,688곳으로 맞벌이 가정 편의를 위해 유치원 돌봄교실은 대부분 정상 운영됐지만 민간 위주인 어린이집은 사정이 달랐던 것이다.
서울 서초동에서 7살 아이를 기르는 김지은(36)씨는 “태풍 피해 없는 평온한 아침을 맞으면서 부모들끼리 단체 채팅방에서 아이들을 등원시켜야 하는 지 여부를 놓고 난상 토론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경기 수원시에 사는 오세훈(38)씨 역시 “3살, 5개월 두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 당일 아침까지도 휴원인지 아닌지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며 “맞벌이나 어린 아이들이 여럿 있는 집에서는 어린이집이 휴원을 해버리면 막막할 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녀가 있는 맞벌이 부부에게 대안 없이 내려진 휴교ㆍ휴원령으로 대혼란을 겪은 워킹맘들은 ‘역대급 설레발’이라는 원망도 쏟아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전날 ‘보육 공백’ 지적에 “민간 기업에서도 상황에 맞게 반가나 연가, 유연근무 실시를 권고하라고” 지시했지만 실효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번 태풍을 계기로 천재지변과 자연재해 등 돌발상황에 대비, 맞벌이부부 자녀의 보육공백을 메우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관련 제안이 빗발치고 있다. 한 부모는 “휴원 결정에 맞벌이라고 하소연했더니 어린이집에서 ‘어쩔 수 없는 경우엔 아이를 보내셔도 되는데 꼭 보내야 하느냐’는 반응이었다”며 “다음부턴 휴교 명령을 내릴 때는 워킹맘 임시공휴일을 지정해달라”고 호소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맞벌이 부부에게 태풍보다 무서운 것이 갑작스러운 휴교, 휴원령”이라며 “고용노동부를 통해 맞벌이 부부 중 한 명은 쉴 수 있도록 지침을 만들어달라”고 제안했다.
정효정 중원대 아동보육상담학과 교수는 “아이 돌봄으로 갑작스레 업무에서 빠져도 이해해줄 수 있도록 직장 분위기를 가족친화적으로 바뀌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런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도록 정부가 힘써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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