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를 위해 단체전 금메달을 따겠다”고 다짐한 구본길(29)이 약속을 지켰다. 구본길, 김정환(35), 오상욱(22), 김준호(24)로 구성된 펜싱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23일(한국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이란을 45-32로 격파하고 금메달을 땄다.
이날 결승전 경기를 앞두고 누구보다 마음을 졸인 건 구본길이었다. 그는 지난 20일 사브르 개인전 결승에서 대표팀 후배 오상욱을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2010년 광저우, 2014년 인천 대회에 이어 개인 3연패 위업을 달성했지만 그의 표정은 결코 편안해 보이지 않았다. 후배의 병역혜택을 가로막았다는 미안함 때문이었다. 부담감 때문인지 그는 경기 초반 무거운 움직임을 보였다. 첫 주자 오상욱에 이어 두 번째로 나선 구본길은 이란의 에이스 사예드 에스마엘자데 파크다만에게 연거푸 실점했다. 경기 후 그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머릿속이 하얗게 됐다”고 돌아봤다. 등 뒤에서 동료들이 “급하게 하지 말고 자신의 스텝을 찾아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나서 연거푸 파이팅을 외친 그는 그제서야 자기의 리듬을 되찾을 수 있었다.
개인전 금메달 이후 눈시울을 붉히며 “단체전에서 반드시 금메달을 따서 후배에게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다”고 주먹을 불끈 쥔 구본길은 이날 단체전에서 2관왕을 달성한 뒤 오상욱을 끌어 안으며 “이제야 드디어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게 됐다”며 활짝 웃었다. 그는 개인전 이후 이날까지 한 숨도 편히 못 잤다고 한다.
이날 금메달로 한국 남자 사브르는 세계 최강의 명성을 이어갔다. 2014년 인천 대회에 이은 단체전 2연패다. 개인전에서도 구본길과 오상욱이 금ㆍ은메달을 사이좋게 나눠가졌다. 개인전 세계 랭킹에서는 구본길이 2위, 김정환이 3위, 오상욱이 5위에 포진해있다. 지난달 중국 우시에서 열린 국제펜싱연맹(FIE) 세계선수권에서도 사상 처음으로 2연패를 달성했다. 이날 결승전에서 대기 멤버로 나선 ‘맏형’ 김정환은 경기 후 “한국 남자 사브르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선ㆍ후배 간 장벽이 없고 신구조화를 잘 이뤘기 때문에 좋은 성적이 난다”고 말했다
자카르타=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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