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애자 서사’는 없는데 ‘퀴어 서사’는 있다. 여기자, 여의사, 여교수만 있는 것처럼. 퀴어의 사랑이 그냥 사랑이 될 때까지 목소리를 그치지 않는 것, 문학이 해야 할 일이다. 퀴어 문학 선집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는 그런 목소리다. 퀴어 문학 전문 1인 출판사 큐큐가 냈다. 요즘 문단의 뜨거운 이름들인 강화길, 김금희, 김봉곤, 박상영, 이종산, 임솔아 작가가 고전을 퀴어 서사로 풀어 썼다.
김금희의 ‘레이디’는 열 여섯 살 소녀 둘의 이야기다. 연약한 마음들이 사소한 오해로 끝내 부서지기까지를 그렸다. 소녀들의 사랑은 “사랑 노래들을 사랑 노래인 채로 듣지 못하는” 위태로움이다가 “연가가 연가가 아니게 되면서 무섭게 종결되는 순간”을 맞는다. 동성 친구를 향하는 마음이 ‘사랑인지, 아니라면 뭔지’로 흔들린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퀴어 소설가 김봉곤의 ‘유월 열차’는 소설 판 환상특급 같다. 게이 연인 둘이 탄 기차가 은하철도999처럼 여기저기를 달린다.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에서 따왔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어.” “응. 나도 정말 그랬으면 싶어.” “그저 이대로이기만 해도 좋겠어.” “그럴 수만 있다면.” 김봉곤의 사랑은 언제나처럼 직진한다. 오직 직진인 건 아닌 게 김봉곤 서사의 매력. 객차에 탄 “모래색 여름 약복을 입은 수병”에게 ‘나’가 추파를 던지는 장면이 그렇다.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
강화길ㆍ김금희ㆍ김봉곤ㆍ박상영ㆍ이종산ㆍ임솔아 지음
큐큐 발행ㆍ200쪽ㆍ1만2,000원
실린 단편 6편은 전부 청춘물에 가깝다. ‘노년 퀴어’의 사랑 같은 건 책 속엔 없다. 책을 집어 들며 성애 장면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작가들은 손 잡는 행위에 ‘많은’ 의미를 담았다. “유나가 (…) 나의 손을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잡아서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보던…”(‘레이디’) “한밤, 종로에서조차 눈치를 보며 마지못해 손을 내어주던 애가 이런 대낮에!”(‘유월 열차’) “하트가 내 손을 잡았다”(이종산 ‘볕과 그림자’), “어깨동무를 하고 팔짱을 끼고 손을 잡아왔다…”(임솔아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 퀴어 문학 소비되는 방식이 여전히 ‘보수적’이라는 뜻일까.
문단에서 퀴어는 팔리는 콘텐츠다. 선집 출간 비용 크라우드 펀딩은 목표액인 1,000만원을 훌쩍 넘겼다. 큐큐는 선집을 매년 한 권씩 낼 거라고 한다. 그 사랑을 멈추라는 말을 세상이 그만 할 때까지. “정상이라는 것은 계급이고 권력이라고 생각해. (…) 나는 비정상이어서 아픈 게 아니라 나를 거부하면서까지 정상이 되려고 애를 썼기 때문에 아팠어”(‘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라는 말이 슬프게 들리지 않을 때까지.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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