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은 천혜의 요새다. 자연석을 이용한 방어적 지형이 잘 갖춰진 덕분이다. 2000년 전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하남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뒤 성을 쌓고 군사훈련장과 병기창고를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인조는 남한산성의 문을 닫아 걸고 47일간 청나라 공격에 맞섰다. 군사정권 시절 대학생 집체(集體)훈련을 시켰던, 문무대(文武臺)라 불린 학생중앙군사학교와 육군교도소도 이곳에 있었다. 병사들이 군부대 영창에 가게 되면, “남한산성 간다”고 했던 것도 악명 높았던 육군교도소의 영향이다.
▦ 2016년 국정감사에서 방송인 김제동의 영창 발언이 논란이 됐다. 그는 “단기사병 근무 시절 군 장성들 행사에서 사회를 보던 중 군사령관(육군대장)의 사모님을 알아보지 못해 ‘아주머니’라고 불렀고, 그 벌로 13일간 영창 생활을 했다”고 주장했다. “영창 갔다 온 기록이 없다”는 국방부 해명에, 김제동은 “(내가) 근무한 사단에서는 군기교육대를 영창이라고도 하고 영창을 군기교육대라고도 했다”고 말했다. 군기교육은 말 그대로 바른 복무태도 등을 교육하는 것이고, 영창은 잘못을 저지른 병사를 감금하는 징계 처분이다.
▦ ‘장성(將星) 놈이 나온다. 키 크기 팔대 장성, 제 밑에 졸개행렬 길기가 만리장성···졸병 먹일 소ㆍ돼지는 털 한 개씩 나눠주고 살코기는 혼자 몽창 먹고 배고파 탈영한 놈 군기 잡아 패서 영창에 집어넣고···’ 김지하의 시 오적(五賊)은 군 장성을 이렇게 풍자한다. 영창은 지휘관 재량으로 병사를 가둘 수 있는 제도다. 헌법의 영장주의에 위배돼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부당 감금이다. 간부가 아닌 병사에게만 적용돼 평등권도 침해한다. 참여정부가 폐지를 추진했으나 국방부 반대로 무산됐었다.
▦ 국방부가 영창을 없애고 대신 군기교육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1896년 육군징벌령에 처음 등장한 이래 병사들 규율 잡기에 이용돼 온 영창제도가 122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다. 2013년 실태조사를 벌인 국가인권위는 영창이 징계제도로서 부적합하며 개선 효과도 없다고 판단했다. 군의 존재가치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군기 확립이 중요한 이유다. 장병들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자기 책임을 완수하는 게 진정한 군기다. 병사들 인권 침해는 아랑곳없이 지휘관 편의에만 맞췄던 영창제도의 폐지를 환영한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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