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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생태] 수줍게 피어난, 멸종 위기 선제비꽃… 우리 아이들도 볼 수 있을까요

입력
2018.08.25 04:4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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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방계 식물, 지구 온난화 탓 위기

약용ㆍ관상용 불법 채취도 한 몫

# 광릉요강꽃 등 관속식물 88종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해 보호

# 세계 유일 희귀식물 제주고사리삼

자생지 파괴되며 생존에 큰 위협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인 광릉요강꽃은 현재 국내에 약 1,000개체 정도가 생육하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인 광릉요강꽃은 현재 국내에 약 1,000개체 정도가 생육하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해마다 장마철이 되면 떠오르는 식물이 있습니다. 9년 전 6월 우연히 습지 관련 조사 보고서에서 보게 된 멸종위기야생식물Ⅱ급인 선제비꽃입니다. 선제비꽃은 북방계 여러해살이풀로서 국외로는 러시아, 일본, 중국에 분포하고, 국내에는 수원 북쪽 습한 들판에서 자란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수원 어디에서도 선제비꽃을 다시 관찰했다는 소식은 없지요. 오래 전 수원에서 채집된 표본만이 한 대학교 표본관에 남아 있다는 말을 전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보고서에서는 경남 양산의 한 습지에서 서식하고 있음이 확인이 된 겁니다.

보고서 속이지만 긴 억새들 틈바구니에서 가녀린 모습으로 수줍게 꽃을 피운 선제비꽃의 자태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고, 결국 조사 장비를 챙겨 경남 양산의 조사지역까지 한걸음에 달려갔습니다. 보고서 속에 기록된 자생지 환경을 떠올리며 해당 지역을 한참을 찾은 결과 드디어 선제비꽃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선제비꽃의 색은 흰색이나 연한 자주색으로 다른 꽃보다 화려하진 않지만 오히려 이 모습이 순수하게 느껴졌습니다. 선제비꽃은 2005년 야생동ㆍ식물보호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멸종위기야생식물Ⅱ급으로 지정되어 현재까지 법정보호종으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경남 양산의 한 습지에서 가녀린 모습의 선제비꽃이 피어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경남 양산의 한 습지에서 가녀린 모습의 선제비꽃이 피어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식물들

선제비꽃과 같은 멸종위기 야생생물은 자연적 또는 인위적 위협요인으로 인하여 개체 수가 현격히 감소하거나 소수만 남아 있어 가까운 장래에 절멸될 위기에 처해 있는 야생생물을 말합니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환경부가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데요. 멸종위기 정도에 따라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과 Ⅱ급으로 나누어 관리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국내 생물종은 4만9,027종.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반달가슴곰, 두루미 등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 삵이나 검은머리물떼새는 Ⅱ급에 속합니다. 관속식물(뿌리 및 줄기, 잎의 관다발이 발달하는 식물 전체)만 살펴보면 4,518종이 한반도의 복잡한 지형과 기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중에서 야생생물법에 보호를 받는 관속식물은 88종에 달하며, Ⅰ급은 광릉요강꽃, 풍란, 금자란, 암매를 비롯한 11종, Ⅱ급은 가시연, 대흥란, 제주고사리삼을 포함한 77종이 지정되어 있습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인 광릉요강꽃은 난초과 여러해살이풀인데요, 경기도 광릉에서 처음 발견되었습니다. 국내에는 경기도, 강원도, 전라도에, 국외로는 중국, 일본, 대만에 분포합니다. 서식지는 해발고도 300~1,100여m 산지 숲 속에서 배수가 좋고, 건조한 곳에서 자랍니다. 현재 국내에는 약 1,000개체 정도가 생육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낮은 결실률과 무분별한 채취의 위협으로 개체수 감소가 우려되고 있습니다. 주로 제주도와 남해안 일대 절벽바위, 나무에 붙어사는 풍란은 바람이 잘 통하고 공기 중 습도를 얻기 쉬운 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아름다운 꽃과 향기로 관상가치가 매우 높아 과거에 무분별하게 채취되면서 남아있는 개체수가 현저히 적은 상황입니다.

주로 제주도와 남해안 일대 절벽바위에 붙어 사는 풍란은 아름다운 꽃과 향기로 무분별하게 채취돼 왔다. 국립생태원 제공.
주로 제주도와 남해안 일대 절벽바위에 붙어 사는 풍란은 아름다운 꽃과 향기로 무분별하게 채취돼 왔다. 국립생태원 제공.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이라고 해서 개체 수가 많거나 그 가치가 낮은 건 아닙니다. 제주고사리삼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제주도 중산간 지역의 곶자왈에만 드물게 자라며, 세계적으로 1속 1종인 희귀식물입니다. 이 역시 자생지 파괴와 무분별한 채취로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물고사리는 물 흐름이 거의 없는 논, 논둑, 수로 등지에 생육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전라도, 충남, 부산 일부 지역에 분포하는데요, 논을 비롯한 습지의 매립이 가장 큰 위협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산작약은 약용식물로 개체수가 위협받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산작약은 약용식물로 개체수가 위협받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식물들이 위기에 처한 이유

우리 주위에 있는 식물들이 왜 위기에 처하게 됐을까요. 일반적으로 식물의 생육을 위협하는 요인은 크게 자연적인 요인과 인위적인 요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연적인 요인으로는 산사태, 산불, 범람, 야생동물 섭식 등이 있고, 인위적인 위협 요인으로는 각종 개발사업으로 인한 자생지 파괴, 불법채취, 자원의 무분별한 이용 등이 대표적입니다.

인위적 위협요인으로 자생지나 개체 수가 현저히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식물은 독미나리, 매화마름, 순채, 가시연, 전주물꼬리풀, 황근 등이 있습니다. 또 약용, 관상용, 산나물 이용 등에 의한 불법채취로 광릉요강꽃, 풍란, 한란 등 주요 난초류 식물과 산작약, 백부자, 한라솜다리, 황근, 가시오갈피 등이 위협받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로 위기에 처한 식물들도 있습니다. 기생꽃, 독미나리, 한라솜다리, 조름나물, 선제비꽃 등 북방계 식물들이 쇠퇴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귀한 식물들에게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는 요인도 있습니다. 바로 야생화 사진 촬영을 하는 사람들인데요. 이러한 사진가들의 활동으로 새로운 식물이나 미기록된 식물이 종종 발견되어 학계에 보고됐다는 소식을 종종 접하게 됩니다. 이는 우리나라 식물학계에 적잖이 기여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일부 희귀한 종이나 자생지에는 너무 많은 사진가들이 일시에 찾아와 자생지나 식물이 심하게 훼손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실제 10여년 전 전남 고흥의 섬 해안가에선 풍란이 생육하는 100여m에 달하는 절벽에 밧줄이 설치되어 있는 모습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국가기관이나 전문가들은 식물들의 절멸을 막고 보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요, 여전히 한편에서는 이들이 살아가는데 불편을 주는 요인들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에만 해당하는 일은 아닙니다. 현재와 같은 생물들의 멸종을 방치할 경우 향후 50년 내에 지구 동ㆍ식물종의 약 25% 가량이 멸종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식물종에서 세계적으로 약 3만5,000여종이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해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제주고사리삼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제주도 중산간 지역의 곶자왈에만 드물게 자란다. 국립생태원 제공
제주고사리삼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제주도 중산간 지역의 곶자왈에만 드물게 자란다. 국립생태원 제공

되살아나는 식물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을 보호하는 것은 건강한 생태계를 회복하는 데 중요한 일입니다. 국가적 생물다양성 확보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가운데 서식지 보전 및 무분별한 남획과 채취를 방지하는 데서 나아가, 보다 적극적인 증식ㆍ복원 대책의 수립과 시행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지난해 말 개정된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멸종위기종에 관한 각종 금지조항과 의무사항을 명시하고 있는데요, 이를 위반하면 최대 5,000만원까지 벌금을 물거나 7년까지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금지나 의무사항만을 규정하고 있는 게 아니라 서식지 보전, 멸종위기종 보호대책수립 등 멸종위기종의 보호와 생존을 위한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멸종위기식물에 대한 복원 사업도 추진되고 있는데요, 환경부는 지난해 8월 경북 영양에 멸종위기종복원센터를 준공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멸종위기에 처한 식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종에 대한 정밀한 생태조사를 통하여 종 정보를 확실하게 확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무분별한 이용, 개발, 불법 채취에 의한 위협요인을 감소시키거나 없애기 위한 노력도 수반되어야 합니다.

올해는 연일 기록적인 폭염이 우리들의 일상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태풍이 한반도를 비켜가다가 제19호 태풍 ‘솔릭’이 한반도에 상륙하면서 남부지방도 강한 비가 내렸습니다. 그 소식들 들으니 다시 선제비꽃이 아른거립니다. 선제비꽃은 장마나 집중 호우 시 물에 잠겨 생존에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태풍의 영향으로 내린 많은 양의 비를 잘 견뎌냈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잠시 잊고 있었던 선제비꽃을 만나러 조사 장비를 챙겨야겠습니다. 우리가 앞으로도 선제비꽃을 볼 수 있을까요.

이희천 국립생태원 경영지원실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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