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훈련소 ‘연무대’ 출신이거나 입대를 앞둔 이들에게 논산이라는 지명은 그리 달갑지 않다. 그러나 연무대 이전부터 논산은 군사적 요충지였다. 부적면 충곡리 일대 산자락은 ‘계백장군유적지’로 조성돼 있다. 계백장군의 묘소와 사당인 충장사가 있고, 백제군사박물관도 들어섰다.
백제와 신라가 결전을 벌인 황산벌에서 가까운 곳이라는데, 아직까지 황산벌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1당 100의 정신으로 신라군에 맞서 계백의 5,000 결사대가 장렬히 전사한 곳이지만, 역사는 패자의 기록에 인색하다. 최후 결전을 앞두고 아내와 자식을 제 손으로 먼저 보낸 계백의 애국충정만 강조됐을 뿐, 사후의 이야기는 알려진 게 없다. 유적지도 명확한 기록이 아니라 전해 오는 이야기와 파편적 단서로 재구성했다.
인근의 충곡서원은 원래 사육신을 모셨는데 조선 숙종 때부터 계백장군을 모셨다는 점, 이곳 충혼산의 원래 이름이 머리가 떨어졌다는 뜻의 수락산이라는 점, 인근 마을이 가장골(가매장한 골짜기)이라는 점 등이 계백유적지의 바탕이 됐다. 그중에서도 계백장군 묘는 홍사준 국립부여박물관장(1946~1961년 역임)이 마을 주민들에게 들은 ‘장군묘’를 근거로 조성됐다. 현 유적지 일대에 수많은 무덤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주민들이 정성 들여 관리하며 해마다 제를 올리는 봉분이 있었다. 그 장군 묘가 지금의 계백장군 묘다. 이러한 사정을 대변하는 일화도 재미있다. 순창문화원에 근무하는 한 연구원이 이곳을 다섯 번이나 방문했는데 ‘계백장군 묘는 올 때마다 훌쩍 자라 있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단다. 이에 논산의 문화해설사도 ‘그만큼 논산시에서 잘하고 있다는 얘기죠?’라며 되받았단다. 어쨌거나 계백장군 묘는 1989년부터 도지정문화재로 관리하고 있다. 묘지석에도 ‘전할 전(傳)’ 자를 떼고 ‘백제계백장군지묘(百濟階伯將軍之墓)’로 적고 있다.
유적지는 잔디밭과 솔숲이 어우러져 공원처럼 깔끔하다. 말을 탄 계백장군 동상에서부터 사당과 묘지를 거쳐 황산벌(로 추정하는 곳)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까지 가볍게 산책하기에 그만이다. 계백유적지에서 내려다보면 푸른 탑정호가 한눈에 들어온다. 충남에서 두 번째로 넓은 호수다. 유적지에서 내려오면 바로 탑정호 수변생태공원 주차장이다. 연꽃원, 청포원, 잠자리연못 등이 미로처럼 연결돼 있고, 호숫가로 나가면 ‘수변데크산책로’로 이어진다. 몇몇 지점은 버드나무 군락이 터널을 이뤄 운치를 더한다. 일몰 무렵이 특히 아름답고, 가을 한나절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육군 논산훈련소 인근 선샤인랜드는 생생한 전투 게임을 즐기는 서바이벌 경기장, 스크린 사격ㆍ 실내 사격ㆍVR 전투를 즐길 수 있는 밀리터리 체험관, 1950년대 서울 거리를 재현한 영화 세트가 함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연무대 각개전투 훈련장이 있던 자리다. 애초에는 예비 입대자와 그 가족들을 겨냥했다는데, 아무래도 타깃을 잘못 잡은 듯하다. 곧 군대 갈 사람이 굳이 이런 체험을 하고 싶을까. 대신 초ㆍ중ㆍ고등학생과 군 복무를 마친 직장인들에게 의외로 인기를 끌고 있다. 신병 입소일이 휴일인 논산훈련소 조교들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선샤인랜드 옆에는 완전히 결이 다른 시설이 개장을 기다리고 있다. 바로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스튜디오다. ‘밀리터리 체험관’을 ‘선샤인랜드’로 발 빠르게 이름을 바꾼 것도 바로 이 스튜디오 때문이다. 아직까지 마무리 촬영이 한창이라 들어갈 수 없고, 사진 찍는 것도 철저히 막고 있다. 드라마 방영이 끝나는 9월 말경이면 시설을 정비해 관람객을 맞을 예정이다. 입영 도시 논산의 새로운 ‘햇살’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논산=글ㆍ사진 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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