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자녀의 남다른 경쟁력을 고민하며 
 어떻게든 성적을 올리려 골몰하곤 한다. 
 참된 교육 아닌 사육에 빠진 건 아닐까.’ 

오래 전 관악산으로 등산을 다닐 때 일이다. 하루는 해가 뉘엿뉘엿 떨어질 무렵에 산을 찾았다. 인적이 거의 끊길 시간인데도 중년 여성 두 사람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기도발이 영험하기로 소문난 연주암을 찾는 수험생 엄마들이었다. 엄마들은 평소 암자를 자주 찾은 듯 몸이 가볍고 날랬다. 두런두런 주고받는 얘기가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해 은근슬쩍 졸졸 뒤를 따랐다. 결국 암자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일행처럼 움직이는 형국이 됐다.

엄마들은 몇 발짝 뒤의 나를 크게 의식하지 않고 수험생 때문에 겪는 마음고생을 속속들이 털어놨다. 자녀 성적에 일희일비하며 살 수밖에 없는 일상에 대한 하소연이 자주 들렸다. 혹여 자녀 심기를 건드릴까봐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고충도 드러냈다. 말도 안 되는 생떼와 짜증으로 속을 썩이는 자녀에 대한 원망을 토로하는 대목에선 서운함이 진하게 묻어났다. 자녀가 대학에 가기만 하면 여태 당했던 걸 죄다 되갚아 주겠다는 다짐으로 대화는 마무리됐다.

10년도 훨씬 더 지났건만 마치 어제 일처럼 떠오르는 게 신기하다. 아마 그간 나 자신도 비슷한 마음 고생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올봄 막내딸이 대학에 입학했다. 막내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덕분에 수험생 학부모로서 남들만큼 힘들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아침 저녁으로 늘 마음 졸이며 수험생 심기를 살피는 건 불가피했다. 마뜩잖은 일이 있더라도 눈을 질끈 감고 넘어갔던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어쨌든 막내가 집에서 멀지 않은 대학에서 관심 분야를 공부하게 됐으니 그저 안도할 따름이다.

저소득층 지역에 소재한 막내의 모교는 대입 성과가 썩 좋지 않은 학교였다. 그걸 알면서도 난 막내를 그 학교로 이끌었다. 내신 관리의 이점이 핵심 고려사항은 아니었다. 언젠가 무심결에 자신을 빈곤층이라 여긴다는 말을 흘린 게 결정적 이유였다.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과 어울리며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자신이 그간 누려온 것에 감사하고 인간적으로 좀 더 성장한다면 더욱 좋겠거니 싶었다.

고등학교 입학 직후 막내는 상당한 문화 충격을 받은 듯했다. 많은 학생들이 말 못할 사연 한두 가지는 지닌 것으로 보인다는 말을 했다. 이전에 거의 만나보지 못한 학생들과 생활하면서 많은 걸 느낀 게 분명했다.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회적 약자의 삶에도 눈을 떴다. 그런 문제의식은 대학 전공을 결정하는 데도 큰 영향을 끼쳤다.

삶의 결을 달리하는 학생들과 교유하며 세상을 좀 더 멀리 넓게 보는 안목을 갖추면 좋겠다는 바람은 부모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막상 입시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자식의 성공을 바라는 학부모로서의 욕심이 간단없이 고개를 들었다. 막내가 나이 마흔에 얻은 늦둥이어서 더욱 그랬으리라. 그럴 때마다 막내는 자기 일에 대한 나의 지나친 개입을 배격하며 스스로 반듯하게 중심을 잡았다. 여전히 많이 어리지만 어느 결엔가 맏이 같은 막내로 훌쩍 컸음을 느꼈다.

기실 대입 성과가 부진한 학교로 막내를 이끈 건 모험이었다. 뒷날 두고두고 원망을 살지도 모를 일이었으니. 다만 길게 보면 대학 간판보단 제대로 된 인생 공부가 훨씬 더 가치 있는 자산이 될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다. 그건 내가 굴곡진 청소년 시절을 통해 터득한 소중한 교훈이자 진리였다. 다행히 생소한 환경에서 막내는 숱한 어려움을 잘 헤쳐 나갔다. 덕분에 난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학부모에서 부모로 돌아올 수 있었다.

비록 선의에서 비롯됐을망정 자녀를 헛똑똑이로 키우는 일은 피해야 한다. 사람과 세상 이치에 대한 공부가 미흡하면 단 한 번의 위기에서 모든 걸 잃을 수 있는 게 인생이기 때문이다. 너나없이 우리는 여전히 자녀의 남다른 경쟁력을 고민하며 어떻게든 성적을 올리고자 골몰하는 경향이 있다. 참된 교육이 아닌 사육에 빠진 건 아닌지 늘 되돌아보며 경계할 일이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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