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락 추세 가파른데다 지지층 이탈 심각
지지율 50% 무너지면 국정수행 큰 차질
당장 전면적 개각으로 분위기 쇄신 필요
청와대가 대통령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거나 “오를 수도 내릴 수도 있는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그건 대입 수험생이 성적에 신경쓰지 않는다고 하는 말을 믿는 것과 같다. 실제로 청와대는 매주 발표되는 여론조사 지지율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원인을 분석하며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조바심의 정도가 어느 수준인지를 최근 사례가 보여준다. 고용 통계가 8년 만에 최저치로 추락한 사실이 알려지자 이례적으로 휴일 긴급 당정청 회의가 열렸고, 문재인 대통령은 공식 일정도 없는데 청와대에서 회의 내용을 실시간으로 보고받았다. 국민연금 개편안이 공청회 전에 보도돼 여론이 들끓었을 때는 문 대통령이 직접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지지율이 고공행진 할 땐 보기 어려웠던 신속하고 기민한 대응이다.
청와대가 노심초사할 만큼 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은 심상찮다. 불과 두 달 만에 20%포인트가 떨어질 정도로 하락 속도가 가파르다. 그 동안 너무 높았던 지지율이 조정되는 과정을 넘어 경제와 민생에 대한 ‘실력 부재’가 원인임을 부인할 수 없다. 더 고약한 것은 질적인 측면이다. 애초 문재인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는 보수층 이탈은 예상했던 바지만 중도와 진보층이 돌아선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나마 중도층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지만 진보층 이탈은 정체성과 관련된 것이라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문재인 정부를 만든 주요 지지 기반이 흔들린다는 것은 그 자체가 위험한 징후일 수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통령 지지율 변화에는 몇 가지 경향성이 있다. 두드러진 특징은 호재보다는 악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다. 국민연금, 대학입시, 전기료 등과 같은 소소한 악재가 지지율을 더 크게 좌우한다는 것이다. 대형사건의 영향력도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지기 마련이다. 남북관계가 지금보다 나아져도 지지율이 크게 오른다고 보기 어려운 이치다.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반드시 자신이 책임져야 할 사안에 대해서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특징이다. ‘그들만의 잔치’라는 인상을 주고 있는 민주당 전당대회가 대표적이다. 정책과 비전 경쟁이 아닌 계파중심의 줄세우기에 골몰하는 대표 경선은 ‘컨벤션 효과’를 낳기는커녕 민주당과 대통령 지지율 동반하락에 일조하고 있다.
대통령 지지율은 국정수행의 동력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지지율이 높으면 대통령이 펴고 싶은 정책을 자신 있게 밀어붙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여론만 뒤쫓다 스텝이 꼬이고 종국에는 빈손으로 떠나는 모습을 익히 보아온 터다. 지지층 이탈은 향후 국정 운영은 물론 총선과 대선 등 선거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 예측방법의 하나로 고통지수(misery index)와 대통령 지지율을 공식에 대입하는 것이 있다.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더해 고통지수를 산출하고 선거 직전 대통령 지지율을 넣어 계산하면 승리 후보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고통지수가 높고 대통령 인기가 낮을수록 현직 대통령의 정당이 패할 확률이 높아진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율 변화를 지켜봤다. 60%로 시작했던 지지율이 취임 첫해부터 20%대로 곤두박질 치더니 내내 회복하지 못하는 통치 불능 상태를 경험했다. 지지율의 본질과 요체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문 대통령은 진작 “국민의 높은 지지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두려움”이라고 경계했을 것이다.
지금의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면적인 개각이 필요해 보인다. 현 내각에는 왜 그 자리에 앉아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인물이 적지 않다. 무능하고 무사안일한 인물을 솎아내고 누가 봐도 수긍할 수 있는 사람을 앉히는 것만으로도 분위기는 달라질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늘 강조한 말은 “국민 뜻대로 국민과 함께 간다”였다. 그 초심과 원칙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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