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당시 행정처 심의관 4명
협의 뒤 삭제 실행 진술 확보
양승태 정책에 반기 들던
인권법연구회 관련파일 등 파악
대법 3차례 자체 진상조사에도
증거인멸 탓 실체 파악 못한 듯
대법원의 3차례 자체 진상 조사에도 판사 뒷조사(블랙리스트) 의혹이 풀리지 않은 건 조직적 증거인멸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대법원 수뇌부의 지시를 받은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이 협의해 증거인멸을 실행에 옮겼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수사 중이다.
17일 한국일보 취재 결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봉수)와 특수3부(부장 양석조)는 전날 박모 창원지법 부장판사를 불러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문제가 될 만한 문건들을 모두 지우라”는 지시를 받아 실행에 옮겼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앞서 소환된 김모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와 임모 판사도 같은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위원은 지난해 2월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발령난 이탄희 판사가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를 대상으로 한 ‘중복가입 탈퇴 조치’ 등에 대한 반발해 사표를 냈다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의 만류로 법원 복귀를 결정한 시점에 이 같은 지시를 내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위원은 이 판사가 해당 파일을 발견해 폭로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증거인멸을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위원 지시를 받은 당시 법원행정처 심의관 4명은 검찰 조사에서 지시를 공유하고 협의한 뒤 판사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문건을 삭제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삭제된 문건에는 양승태 대법원장 정책에 반기를 들던 국제인권법연구회, 인권과사법제도소모임(인사모)와 관련된 파일들이 포함된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김 부장판사는 뒤늦게 법원행정처를 떠나 서울중앙지법으로 첫 출근하는 날 새벽 2만4,500여개 파일을 삭제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 부장판사를 포함한 심의관 4명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의 핵심 인사들로 이들이 작성한 문건 상당수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대법원은 판사 블랙리스트 작성ㆍ관리 의혹이 불거진 후 3차례 자체 진상 조사를 거쳐 올해 5월 “사법행정을 비판한 법관들의 성향과 동향, 재산관계 등을 파악한 파일들의 존재는 확인됐다”면서도 “다만, 블랙리스트까지 만들어 조직적, 체계적인 인사 불이익을 줬다고 인정할만한 자료는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검찰은 대법원이 블랙리스트와 판사들의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는지 여부를 밝히지 못한 이유를 이들의 증거인멸 때문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 전 위원 지시가 공용물 손상에 해당한다고 판단, 조만간 이 전 위원을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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