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의 반란이 이어지고 있다. 적폐청산이라는 틀 속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사회 각 영역의 갑질이 폭로되고 있다. 오랫동안 막혀 악취를 풍기던 하수구가 시원하게 뚫리는 느낌이다. 비정상적 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을의 용기있는 선택에 우리는 박수를 보내며 탐욕스런 갑의 추락에 환호한다. 더운 날씨에 마시는 한 잔의 청량음료가 주는 시원함을 느낀다.
하지만 갑질의 폭로가 끝없이 이어지면서 통쾌함보다는 자괴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했던 것보다 우리 사회가 훨씬 더 부패돼 있기 때문이다. 사회 곳곳에 뿌리 내린 불합리한 관행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돌아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점점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 시각도, 삶을 대하는 우리 자세도 부정적으로 되어 간다. 과거의 불합리한 관행을 몰아내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기보다는 절망에 빠져드는 듯하다.
신문, TV, 포털을 들여다봐도 화가 나고 우울해지는 소식들 뿐이다. 하지만 아직 살맛 나는 세상임을 확인하고 싶다. 탐욕으로 횡포를 일삼는 갑보다 주변에 사랑을 베푸는 갑이 더 많음을 확인하고 싶다. 시기와 불만으로 가득찬 사회 구성원보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자족하는 사회 구성원이 더 많음을 확인하고 싶다.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싶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그리고 싶다.
임산부를 만날 때마다 순산을 기원하는 편지와 함께 용돈을 넣은 흰봉투를 건네고 택시요금을 받지 않는 택시기사도, 소방관들이 배달음식을 주문할 때 포장용기에 감사의 마음을 담은 문구를 적어 보내는 배달음식 업체 사장도, 이어지는 폭염 속에 수고하는 택배기사들을 위해 격려의 글과 함께 시원한 음료를 아파트 입구에 준비해 놓은 아파트 주민도 모두 우리 이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딸을 수시로 때리고 괴롭힌 동급생 남학생이 조손가정 아이임을 전해 듣고 그 아이를 사랑으로 감싸며 그 아이의 외로움을 달래 주었던 피해 학생의 아버지, 기형아 진단을 받은 태아가 건강하게 태어나자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위해 아이 생일 때마다 백만 원씩 기부하는 부모, 아직 살 만한 세상임을 실감나게 하는 소박한 이야기들은 우리 주변에 가득하다.
희망적인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유일한 길은 사회 부조리를 뿌리 뽑는 것이라 믿으며 끊임없이 잘못을 들추어내고 과거를 부정하는데 몰입한다. 이제 웬만한 갑질이나 불합리한 관행이 드러나도 무덤덤하다. 더 자극적이고 더 큰 공분을 불러일으킬 무언가가 필요한 듯한 느낌도 든다. 분노와 상처가 가득한 우리에게, 그리고 그 상처로 인한 상실감과 자괴감을 느끼는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것은 위로일 것이다. 그래도 살 만한 세상을 살고 있다는 위로 말이다. 한 달간 이어지는 폭염 속에서 순간의 시원함을 주는 청량음료도 좋지만 몸을 보하는 뜨끈한 삼계탕 한 그릇이 더 그리운 이유다.
주위를 둘러보자. 그리고 소박하지만 따뜻한 맘을 담은 일상의 경험들을 찾아 나누어 보자. 살기 가득한 글들이 넘쳐 나는 SNS와 인터넷 공간이 서로를 칭찬하고 위로하는 따뜻한 글들로 채워졌으면 한다. 따뜻한 미담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상쾌한 하루를 보낸 경험이 있다. 나아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그려본 경험이 있다.
과거의 부정적인 관행을 바로잡고자 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자괴감과 피로감으로 구성원의 용기 있고 힘겨운 노력이 동력을 잃을까 두렵다. 어느새 우리는 주변의 모든 현상을 갑질과 적폐청산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았으면 한다. 적폐청산의 틀 속에서 서로의 잘못을 들추어내기 위해 혈안이 되기보다는 서로의 부족함과 어리석음을 감싸 주고 서로의 공을 찾아 칭찬해 주었으면 한다.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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