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비서 김지은(33)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53) 전 충남지사에 대한 무죄 판결 후 현행 법체계가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현행법 한계를 보완할 법안은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노 민스 노 룰(No means no ruleㆍ거부했음에도 성관계를 시도하면 강간)’ 등을 언급하며 “상대방의 성관계 동의 의사 없이 성관계로 나아갈 경우 이를 강간으로 처벌하는 체계를 도입할 것인지 여부는 입법정책적인 문제”라는 게 재판부 무죄 판결 취지지만 이미 여성계에서는 ‘비동의 성관계’에 대해서도 성폭력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해왔다. 올 초 미투(Metoo) 정국에서 국회의원들이 부랴부랴 성폭력 처벌 강화 법안들을 쏟아냈지만, 국회 본회의 상정조차 되지 않은 채 계류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16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발의된 미투 관련 계류 법안 40여 개로, 이 가운데는 지난 2월 천정배 민주평화당 의원이 대표발의 한 형법(제303조 등) 개정안은 ‘비동의 간음죄’를 신설하는 내용을 담아 사실상 ‘노 민즈 노 룰’ 도입 법안이란 평가다. 비동의간음죄는 폭행이나 협박 없어도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은 채 성관계를 맺을 경우 처벌할 수 있다는 의미로, ‘피해자의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정도’에 이르러야 형사처벌이 가능한 현행법 한계를 보완하는 법안이다. 지난 4월 같은 당 최경환 민주평화당 의원도 ‘폭행 또는 협박’의 정도를 ‘피해자의 반항을 곤란하게 한 정도’로 폭넓게 규정하도록 한 형법(제297조) 개정안을 발의했다.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도록 한 법안도 있다.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4월 대표발의 한 형법(제303조) 개정안을 보면 ‘업무, 고용 기타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간음한 자’를 대상으로 한 현행법에 ‘사실상의 영향력 및 실질적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을 포함했다.
그러나 조속한 통과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여야가 이날부터 열린 임시국회에서만큼은 미투 법안을 처리 하자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각종 민생 현안이나 드루킹 특검 연장 같은 정쟁 탓에 또 뒷전으로 밀려나는 게 아니냐는 시선이 많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공약한 만큼, 여당부터 유력 대권후보의 미투 논란에 주저하지 말고 관련 법안 처리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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