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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과 별이 쉬어가는… 제주의 느릿느릿함 음악에 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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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과 별이 쉬어가는… 제주의 느릿느릿함 음악에 담았죠”

입력
2018.08.17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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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장필순 새 앨범 ‘소길花’ 

 지난해 작고한 조동진의 동생인 

 조동익ㆍ동희 남매가 만든 추모곡 

 이효리ㆍ이상순과 이적이 선물한 

 제주의 삶 담은 노래 등 12곡 

 부산ㆍ서울서 4년 만에 공연도 

제주에 사는 가수 장필순도 폭염의 직격탄을 맞았다. 그는 “제주도 물이 말라 농업용수를 격일제로 쓴다”고 말했다. 집에 태양광 발전 설비를 갖춘 장필순은 열대야로 할 수 없이 에어컨 신세를 진다. 페이지터너 제공
제주에 사는 가수 장필순도 폭염의 직격탄을 맞았다. 그는 “제주도 물이 말라 농업용수를 격일제로 쓴다”고 말했다. 집에 태양광 발전 설비를 갖춘 장필순은 열대야로 할 수 없이 에어컨 신세를 진다. 페이지터너 제공

노래 ‘제비꽃’으로 국내 포크 음악에 새 길을 낸 조동진이 세상을 떠나고 두 달 뒤인 지난해 10월. 장필순과 음악인인 조동익, 조동희 남매는 고인을 위한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조동익, 조동희는 조동진의 동생들이다. 조동진을 음악적 버팀목으로 여겼던 이들이 모여 고인을 기리는, 이를테면 ‘기념 식수’였다.

조동익이 멜로디를 쌓고 조동희가 노랫말을 보탰다. 곡 제목은 ‘그림’. 조동희가 조동익이 만든 음악을 듣고 풍경화로 유명한 영국 화가 피터 도이그의 ‘밀키웨이(은하수)’가 떠올라 그렇게 지었다고 했다.

“흰 은하수를 천천히 걸어 다다랐나요 꿈꾸던 그곳”. 장필순은 나직하고 처연한 목소리로 곡에서 조동진을 추억한다. “형(조동진)에게 받기만 했지 드린 게 없거든요.” 지난 10일 전화로 만난 장필순은 “형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의 느낌으로 작업했다”고 말했다.

장필순이 최근 낸 8집 ‘소길花(화)’에는 조동진이 살아 숨 쉰다. 앨범에는 조동진이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노랫말을 쓴 ‘저녁 바다’와 ‘그림’ 등 조동진 관련 노래가 1~3번 트랙으로 실렸다.

이효리ㆍ이상순 부부는 이웃인 장필순에 ‘집’을 선물했다. 장필순은 "두 사람이 내게 들려 준 곡이 2~3개"라며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다른 곡을 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JTBC 제공
이효리ㆍ이상순 부부는 이웃인 장필순에 ‘집’을 선물했다. 장필순은 "두 사람이 내게 들려 준 곡이 2~3개"라며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다른 곡을 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JTBC 제공

 이효리 ㆍ이상순 부부, 이적의 ‘음악 선물’ 

장필순은 7집 ‘수니 7’(2013) 이후 5년 만에 새 앨범을 냈다. 2015년 4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소길 시리즈로 한 곡씩 먼저 공개한 10곡에 두 개의 신곡을 더했다. 새 앨범의 1부가 조동진이라면, 2부는 제주다. 소길에 살거나 잠시 들른 장필순의 음악 지기들이 ‘소길화’에 씨앗을 뿌렸다.

“언니, 이 멜로디 언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이효리는 남편이자 기타리스트인 이상순과 이웃인 장필순의 집에 마실 가 ‘집’이라는 곡을 선물했다. 이상순이 통기타로 작곡하고 이효리가 허밍으로 소리를 얹은 곡이다. 이적은 김제동과 제주 여행을 하던 길에 선배인 장필순 집에 들러 “누나가 불러 주면 좋겠다”며 직접 만든 노래인 ‘고사리 장마’를 들려줬다. 이효리 ㆍ이상순 부부가 준 노래엔 이슬과 별이 쉬어 가는 장필순 집 마당의 풍경이 담겼다. 이적이 건넨 곡은 제주의 봄에 오는 짧은 장마를 일컫는 ‘고사리 장마’ 이야기다.

장필순의 앨범 소개. “이번 앨범엔 더 클래식의 박용준, 동물원의 배영길과 이경 등 오랫동안 음악으로 마주했던 동료들의 곡을 여럿 담아봤어요. 따로 노는 단편처럼 들리지 않길 바랐는데 앨범에 잘 어우러진 것 같아요.”

가수 조동진(왼쪽 첫 번째)과 장필순(오른쪽 첫번째)가 1980년대 활동하던 모습. SBS 제공
가수 조동진(왼쪽 첫 번째)과 장필순(오른쪽 첫번째)가 1980년대 활동하던 모습. SBS 제공

 땔감 줍고 흙 밟으며… 산촌 마을 13년 

장필순과 전화통화를 한 시간은 오후 6시. 장필순은 “아이들과 놀아 주다”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장필순은 반려견 열마리를 아이들이라고 불렀다. 밤에 쏟아지는 별을 보며 마당에서 통기타를 치고 노래하곤 했던 제주 생활의 호사도 요즘엔 포기했다. 마당을 반려견들의 쉼터로 내줘서다.

2005년부터 제주에 터를 잡고 살면서 장필순의 음악은 변했다. 마당에 사과나무를 심고 겨울엔 손수레를 끌고 땔감을 주우러 다닌 ‘소길댁’의 음악엔 자연의 소리와 풍경이 만발한다. 8집에 실린 ‘집’은 풀벌레 소리로 시작한다. 수줍게 이글거리는 전자 음악이 인상적인 ‘아침을 맞으러’는 지평선에서 이제 막 고개를 내민 태양의 일출 같다. 장필순은 “앨범에 실린 12곡을 모두 집에서 녹음하다 보니 노루나 벌레 소리가 곳곳에 들어 있다”고 했다. “기계음이라도 가사와 음악에 맞는 소리를 찾다 보니 그게 나뭇잎 소리나 바람 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로 들리더라”는 말도 들려줬다.

장필순은 “제주에 살며 느리게 사는 용기가 생겨 음악도 변한 것 같다”고 했다. 서울에서 화려한 것들 때문에 놓쳤던 것들이 제주에선 더 잘 보여 생긴 변화이기도 하다. 장필순은 한라산 중턱 산촌 마을에서 흙을 밟고 산다. 집 마당엔 백일홍이 피었다고 한다. 요즘 고민은 제주 비자림로 확장 공사로 일부가 잘려 나간 삼나무숲 파괴다.

장필순은 1982년 대학연합 음악동아리인 햇빛촌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1983년 듀엣 소리두울을 거쳐 1989년 1집 ‘어느새’로 솔로로 데뷔했다.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1997)가 그의 대표곡. 장필순은 6집 ‘수니6’(2002)를 시작으로 2000년대 들어 포크 음악에 전자 음악을 버무린 실험을 거듭하며 창작의 보폭을 넓혔다.

장필순은 18일 부산 오즈홀에서, 25, 26일엔 서울 벨로주홍대에서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을 한다. 4년 만의 단독 공연이다. 10월 13일에는 제주 오백장군갤러리에서 노래한다. ‘소길화’ 시리즈의 연작은 당분간 숨 고르기에 들어간다. 그는 “올가을 선들바람이 불 때 기존 곡을 새로 편곡한 곡들을 엮은 ‘리워크 앨범’을 내보려 한다”고 귀띔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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