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ㆍ베트남 사례 예로 들면서
종전선언 이전 관계 정상화 촉구
북한 비핵화 협상에서 상대방의 선(先) 조치를 주장하며 줄다리기를 벌이는 북한과 미국의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한 카드로 워싱턴과 평양에 연락 사무소 교차 설치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북한이 요구하는 종전선언 이전에 연락사무소 설치를 통해 관계개선의 신호를 보내면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시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셉 윤 전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15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한 ‘북미가 실망의 사이클을 어떻게 끊어낼 것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북미가 4개항으로 구성된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이행 순서 문제로 교착 상태에 봉착해 위기의 사이클로 빠져들 수 있다면서 “이를 피하기 위해선 외교적 과정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워싱턴과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특히 미국 입장에서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제1항인 ‘북미 간 새로운 관계 수립’ 약속을 충족할 준비가 돼 있다는 강한 신호를 보내는 동시에 미국과 새로운 관계를 추구한다는 북한의 진정성을 시험해볼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게 윤 전 대표 주장이다.
윤 전 대표는 “연락사무소는 미국이 과거 적성국이었던 아시아 국가들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데 기여한 바 있다”며 “1970년대 베이징 연락사무소와 1990년대 하노이의 연락사무소는 제재 해제에서부터 실종자ㆍ전쟁포로 유해발굴, 정치ㆍ경제ㆍ문화적 관계 확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연락사무소라는 상설 창구를 통해 양측이 지속적인 대화 채널을 확보함으로써 1979년 베이징, 1995년 하노이에 공식 대사관을 여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북미는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문에서 비핵화 단계별 진전에 따라 연락사무소를 교환ㆍ설치하는 한편, 관심사항의 진전에 따라 양국관계를 대사급으로 격상시켜 나가기로 합의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윤 전 대표는 “당시 국무부가 여러 번 평양을 현장 방문해 관련 인력에 대한 언어 훈련을 시켰으며, 북한 관리들도 연락사무소 후보지들을 살펴보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했다”며 “연락사무소 설치는 편집증적이었던 은둔의 김정일 체제에서는 구체화하지 못했지만 보다 바깥세상에 열려 있는 그 아들 체제에서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제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의 외교적 과정을 넓혀가기 위해 (북미 간) 합의문을 다시 논의해야 할 때”라며 “싱가포르 합의에 대한 자체적 해석만을 고수해 선(先) 비핵화만 요구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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