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미투 재판에 악영향 가능성
소송 나서는 피해자 줄어들 수도
여성단체 ‘페미당당’ 집회 열어
수행비서 성폭행 혐의로 ‘미투(#Me Too) 1호 법정’에 선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4일 1심무죄 선고를 받으면서 미투 운동이 동력을 상실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혜화역 여성 시위를 부른 ‘홍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 피의자인 여성 모델이 전날 징역 10개월을 선고 받은 반면 이날 안 전 지사에게는 무죄가 내려지면서 ‘편파 수사, 편파 판결’을 규탄하는 여성 시위는 격화될 조짐이다.
여성계는 우선 이번 판결이 미투와 관련된 첫 선고였던 만큼 앞으로 남은 관련 재판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김씨 폭로가 사회적 관심과 지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법정에서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인정받기 힘들다는 사실이 재차 확인됐기 때문이다. 성폭력 피해로 소송에 나서는 피해자가 줄어들 가능성도 커졌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미투 운동의 선봉 역할을 했던 김지은씨 재판에서 피의자인 안 전 지사가 무죄를 받은 것은 (김씨) 후속 주자로 피해 사실을 폭로한 더 나약한 여성과 익명의 여성, 그리고 미투 운동 지형에 있어서 안 좋은 판이 만들어진 것”이라며 “이번 선고가 미투 운동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꼬집었다.
권력형 성범죄에 면죄부를 준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김씨를 지원하는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날 서부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온갖 유형력, 무형력을 행사하며 괴롭히는 상사들은 이제 면허를 갖게 된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판결이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권력형 성폭력’ 근절 움직임과 사회적 분위기를 역행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이번 판결이 최근 격화하는 ‘편파 수사ㆍ편파 판결’ 규탄 여성 시위에 기름을 들이부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전날 ‘홍대 몰카사건’의 피의자인 여성 모델이 초범임에도 불구하고 징역 10개월을 선고 받은 반면, 부산지법에서 사귀던 여성의 나체사진을 찍어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에 올린 남성은 벌금 200만원의 선고유예를 받은 사실이 알려져 여성들의 반발이 극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안 전 지사 무죄 선고는 집단행동 움직임을 더 확산시키는 도화선이 될 조짐이다. 이날 혜화역 시위를 이끄는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온라인 카페에는 “몰카는 10개월이고 성폭행은 무죄라니”, “(안 전 지사 무죄 선고가)시위 화력에 횃불을 지피고 있다”는 등의 올라오기도 했다. 여성단체 ‘페미당당’은 이날 오후 7시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안희정 무죄 선고한 사법부 유죄’를 주제로 집회를 열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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