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체제 보장 ‘종전선언’ 구상
미국 신중한 태도로 협상 교착
북한 핵 시설ㆍ물질ㆍ무기 등 리스트
어느 정도 내놔야 미국 설득 여지
폼페이오 방북이 가늠좌 될 듯
“종전선언 이야기는 시기상조”
해리스 대사 등 신중론 강조
남북이 합의한 3차 정상회담에 대한 미국이 반응이 주목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을 매개로 북미 비핵화 협상의 활로를 열자는게 우리 정부의 청사진이지만, 북한이 미국이 요구하는 선(先) 비핵화 카드를 꺼내야 남북정상회담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6ㆍ12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종전선언을 통한 체제안전 보장, 이후 비핵화 협상을 통해 경제 제재 완화를 끌어내려던 북한의 큰 구상은 첫 단계인 종전선언부터 미국의 거부라는 걸림돌을 만난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도 연내 종전선언 추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만큼, 3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문 대통령을 설득해 미국으로부터 종전선언을 이끌어 내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아직까지 종전선언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신중하다. 종전선언이 단순히 ‘전쟁이 끝났다’는 정치적 선언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주한 미군 감축이나 철군 등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도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는 13일 서울 국립외교원에서 열린 강연에서 북한이 요구하는 종전선언에 대해 “지금 우리가 뭐라고 얘기하기는 시기상조이고 너무 빠른 것 같다”면서 “싱가포르 합의가 이행되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도 그는 “한 번 종전선언을 하면 후퇴할 수 없는 만큼 초기 시점에 되돌릴 수 없는 조치를 취하는 데에는 한미가 매우 조심해야 한다”면서 종전선언에 대한 미국 정부의 신중론을 대변했다. 비록 6ㆍ12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종전선언을 긍정적으로 언급하기는 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미국 조야의 선(先) 종전선언에 대한 극심한 반대여론을 거스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북한으로부터 최소한 핵 무기 및 관련시설에 대한 상세한 명단은 넘겨 받아야 종전선언에 응할 수 있다는 게 미 행정부의 정리된 입장이다.
3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4ㆍ27 판문점선언을 언급하면서 개성공단 재가동, 금강산 관광 재개 등 경제 교류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엔의 대북 경제제재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이 문제에 신중하게 풀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특히 최근 불거진 북한산 석탄 밀반입 사건은 남북 경제교류에 관한 우리 정부의 운신의 폭을 크게 제한하고 있다.
미국은 비핵화 협상 진전 이전 대북 경제 제재를 풀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11일(현지시간) 미국의소리(VOA)에 따르면 미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최근 일부 동남아 국가들이 북한과의 관계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대화가 북한에 대한 유엔 안보리 결의나 미국의 제재를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제제재 해제의 조건은 비핵화 진전이라는 점을 주지시킨 것이다. 테드 포(공화) 미 하원 비확산 무역 소위원장이 “북한산 석탄 밀반입과 관련, 한국 기업에 세컨더리 보이콧을 부과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의회 내에서 남북 경제교류를 경계하는 분위기도 여전하다.
3차 정상회담이 북미 비핵화 협상의 돌파구가 될지 여부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이후에 가늠할 수 있을 전망이다. 도널드 대통령은 이달 초 김 위원장에게 보낸 친서에서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준비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 폼페이오 장관이 남북 정상회담 전 북한을 방문해 미국이 납득할 만한 비핵화 초기 조치를 약속 받는다면 남북 정상회담이 북한 비핵화 협상에 긍정적 작용을 할 가능성이 높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이 핵 시설, 핵 물질 , 핵 무기 중 그나마 덜 민감한 시설 리스트라도 제시해야 한국 정부가 종전선언에 대한 미국의 자세 변화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단 (리스트를) 신고하면 비핵화 프로세스 진행이라는 관성이 작용하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도 이 부분을 깊이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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