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은 흔히 ‘개미’에 비유된다. 크기는 작지만 숫자는 많다. 기관투자가나 외국인 투자자에게 이리저리 채이는 모습도 유사하다. 그러나 ‘슈퍼개미’는 다르다. 이들은 소형 펀드 뺨치는 규모의 자금을 쥐락펴락하는 선망의 대상이다. ‘개미전도사’라는 필명으로 알려진 이정윤(47) 밸런스투자아카데미 대표도 슈퍼개미로 불린다. ‘재야 주식 고수’가 수면위로 드러난 것은 지난해 2월 샘표식품 5% 주주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서부터. 그는 1분기 보고서 기준 샘표식품 지분 8.94%(40만8,562주)를 보유했다. 주식회사 샘표(49.38%)에 이어 주식수가 두 번째로 많다.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환산한 지분 매수 규모만 150억원이다. 20대 후반이던 1999년 월급 중 100만~200만원의 쌈짓돈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한 지 20여년 만에 수백억원대의 자산가로 거듭난 셈이다.
평범한 월급쟁이는 어떻게 ‘슈퍼개미’가 될 수 있었을까. 그는 “시기가 잘 맞아 운이 좋았던 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가 투자에 나선 1999년은 벤처 열풍이 불면서 자고 일어나면 주가가 오르는 때였다. 며칠 씩 연속 상한가를 치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러나 단지 운만은 아니다. 그는 남들이 한 번 수상하기도 힘든 증권사 실전 투자대회에서 2013~16년 총 네 차례나 수상했다. 세무사 출신인 그는 3년 전부터 그가 대표로 있던 세무법인을 접고 전업 투자자로 활동 중이다. 지난해부터는 ‘밸런스투자아카데미’라는 주식투자 교육회사도 설립, 투자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만난 이 대표는 “3대 영양소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몸에 이상 신호가 오듯 한쪽 면만 파악하게 해주는 분석법은 투자수익을 보장해줄 수 없다”며 “가치분석(재무제표) 가격분석(차트) 정보분석(재료) 등 세 가지를 균형 있고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효율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주식시장에서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 대표와의 일문일답.
-주식시장에 뛰어든 뒤 2년 만에 수십억원을 벌 수 있던 비결은.
“99년 후반부터 2년 간 장이 너무 좋았다. 주식은 ‘언제 시작하느냐’도 중요하다. 고점에서 시작하는 사람들은 돈을 잃을 수 밖에 없고 박스권에서 시작하면 재미를 느낄 수 없다. 코스닥에서 벤처기업 위주로 매매해 큰 수익을 냈다.”
-투자 과정에서 시련은 없었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주가가 2,000포인트에서 892포인트까지 떨어졌다. 웬만한 사람들은 다 떨어져 나갈 위기였고 나 역시 손해를 많이 봤다. 그러나 1,000포인트 선이 무너졌을 때부터는 ‘이젠 거의 바닥’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주가가 1,000포인트에서 277포인트까지 무너졌지만 다시 반등하지 않았나. 이런 확신을 바탕으로 선물옵션의 상방포지션에 배팅했고, 금융위기 때 본 손실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20년간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은 내가 잘했다기 보단 상승장을 만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다. 주가는 시장 상황에 따라 언제든 다시 빠질 수 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마음으로 일희일비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세무법인 대표에서 전업투자자로 전향한 이유는.
“‘잘하는 일’ ‘하고싶은 일’ ‘해야할 일’ 등 세 가지가 합쳐진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하지 않나. 그간 세무사로서 얻는 만족감이나 성취욕도 적지 않았지만 주식투자에서 얻는 행복이 더 컸다. 주식투자를 통해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연 목표수익률은 어떻게 잡나.
“시장 수익률과 별개로 목표 수익률을 잡는 것은 공허한 숫자일 뿐 아무런 의미도 없다. 1만%의 수익도 내봤지만 반 토막이 난 적도 있다. 상승장에서는 남들보다 플러스 알파(+a)의 수익을 내고, 하락장에서 다른 사람보다 손실을 조금 덜 내고 위험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선 재무제표 확인은 필수
차트 관점서 주가 흐름 본 후
좋은 재료가 있는지 살펴야
귀동냥 정보로 매매하면
평생 주식 해도 실력 안 늘어
투자일지 쓰며 스스로 공부를
-여러 종목 중 특별히 샘표식품을 고른 이유는.
“다양한 분석 과정을 거쳤다. 우선 음식료주는 중장기 투자에 적합하다. 짧게는 5년, 길게 15년까지 봤을 때 업종 전체가 우상향이어서 매력적이다. 재무제표, 기업가치,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 점유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웬만한 음식료 기업의 연구개발비는 연 매출액의 1% 미만인데 샘표의 경우 5%로 높은 점도 눈에 띄었다.”
-종목을 선정하는 노하우가 있나.
“전체 장세를 보고 개별 종목보다는 업종을 먼저 정하는 톱다운 방식을 선호한다. 특히 한두가지 특징에 치우치지 않고 ▦재무제표를 살펴보는 ‘가치분석’ ▦주가상승 흐름을 차트 관점에서 분석하는 ‘가격분석’ ▦좋은 재료가 있는지 살펴보는 ‘정보분석’ 과정을 거친 뒤 삼박자가 맞으면 좋은 기업이라 생각한다. 투자 성향은 투자자마다 다르지만 세가지 모두 중요하기 때문에 고루 살펴보는 게 좋다.“
-초보는 재무제표나 차트를 읽는 게 쉽지 않다.
“현금흐름표 등을 읽는 것은 경영학과를 나온 사람도 쉽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재무제표는 확인해야 한다. 4년 연속 적자가 나면 관리종목에 들어가고 5년 이상일 경우 상장폐지가 되는데, 주위에서 ‘이 종목 대박이야’라는 말 한마디에 재무제표도 확인하지 않고 수년간 적자가 난 기업에 투자하는 경우도 적잖다. 주가를 1주당 순자산으로 나눈 주가순자산배율(PBR)이나 순이익으로 나눈 주가수익배율(PER), 주가매출비율(PSR) 등 세가지 숫자가 낮은 게 저평가된 기업이다.”
-‘개미’가 실패하는 이유는.
“자신이 직접 공부를 한 뒤 매수종목을 선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투자자 중 주변 사람이 ‘이 종목이 좋다더라’고 해 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경우 왜 이 주식을 샀는지 설명할 수 없고 매도 시점도 알기 어렵다. 하락장에서도 자신 있게 손절할 수 없다. 사라고 추천한 사람은 주가가 떨어질 때 팔라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 지인에게 귀동냥으로 듣는 정보로 매매하면 평생 주식을 해도 절대 실력이 늘 수 없다.“
-스스로 종목을 고르는 능력을 어떻게 키우나.
“매일 투자일지를 쓸 것을 추천한다. 초등학생들의 그림일기에 형식이 없듯 투자일지도 형식에 구애 받지 말고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을 쓰면 된다.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 기록으로 남기기 때문에 추후 점검해 볼 수 있다. 일종의 ‘오답노트’인 셈이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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