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 김온아(30)ㆍ선화(27) 자매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대회 2연패를 위해 선봉에 나섰다. 여자 핸드볼은 1990년 베이징 대회부터 2014년 인천까지 7번의 아시안게임에서 6개의 금메달을 가져온 대표적인 효자 종목이다. 2010년 광저우에서 일본에 덜미를 잡혀 동메달에 그쳤지만 2014년 정상 탈환에 성공했다.
대표팀 에이스인 김온아는 센터백으로, 왼손잡이 김선화는 라이트윙으로 나선다. 센터백은 농구로 치면 가드 역할이다. 경기 흐름을 파악해 완급 조절은 물론, 코치진의 작전을 실전에 적용해 차근차근 풀어가야 한다. 김선화는 공격수다. 수비 후 상대 공을 빼앗아 공격으로 전환할 때, 센터백과의 빠른 속공 플레이를 통해 확실하게 득점을 해 줘야 팀 분위기가 살아난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핸드볼 공을 잡은 김온아는 애초에 축구나 농구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김온아의 초등학교(전남 무안초)에는 핸드볼팀밖에 없었고, “다른 종목을 하려면 전학을 해야 한다”는 말에 할 수 없이 핸드볼을 시작했다. 그런데도 처음 만져본 공이 낯설지 않았다. 핸드볼을 먼저 시작한 큰언니 김가나(32ㆍ은퇴)의 영향도 있었다. 반면, 김선화는 ‘언니 따라 강남 간’ 격이다. 언니들 운동하는 모습을 보러 핸드볼장에 갔는데, 우연히 왼손으로 던진 빠르고 정확한 공이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실업팀도 그렇지만 왼손잡이 공격수 자질을 가진 선수는 항상 귀했다.
자매는 초중고(무안초-무안북중-백제고) 와 인천시청을 거쳐 SK에 입단하기까지 항상 같은 팀이었다. “자매끼리 상대 팀 선수로 싸우는 걸 보고 싶지 않다”는 부모님의 바람이 한몫 했다. SK 입단 당시 다른 팀이 김선화를 원하기도 했지만 김선화는 결국 언니가 있는 SK를 선택했다.
아무리 찰떡궁합 친자매라도 같은 팀이다 보니 때론 불편할 때도 있다. 김선화가 실수해 코치진에 혼이라도 나면, 김온아는 슬쩍 자리를 피한다. 또 김선화가 슈팅 기회를 놓치면 가차 없이 김온아의 따끔한 질책이 뒤따르는데 다른 후배들보다 더 많이 야단친다. 김온아는 “동생이라 감싸준다는 오해를 사기 싫어서”라고 했다.
대표팀 선후배 앞에서 김선화는 꼬박꼬박 언니한테 존댓말을 해야 하는데 이 부분도 마뜩잖다. “태어나서 언니한테 존댓말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단체 생활 중에 보는 눈들이 많으니 반말을 할 수도 없고…”
현재 대표팀 에이스는 김온아지만, 최근 김선화의 득점력이 크게 향상되면서 유명세가 만만치 않다. 얼마 전에는 ‘김선화 언니 김온아’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왔는데, 김온아는 이를 캡처 해 김선화에게 보냈다고 한다. “이젠 네(선화)가 더 유명해졌다. 내가 더 분발해야겠다”라는 메시지와 함께였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물론 금메달이 목표다. 객관적인 전력상 한국은 숙적 일본과 결승에서 만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개인 목표도 하나씩 추가했다. 김선화의 목표는 언니와 함께 아시안게임을 넘어 2020년 도쿄올림픽 무대에서 메달을 따는 것이다.
예선 첫 경기 북한전(14일)에 대한 기대감도 감추지 않았다. 한국은 2011년과 2012년 아시안 선수권대회에서 북한에 승리한 적이 있다. 김온아는 “경기가 끝난 뒤 북한 선수들에게 ‘예뻐요’라고 했더니 수줍게 웃던 모습이 생각난다”면서 “최근 북한도 세대교체를 했다던데, 예전 멤버들을 이번에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꼭 다시 보고 싶다”라며 웃었다.
강주형 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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