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産 위조 등 7차례 66억어치 반입
중개무역 수수료로 현물로 받아
국내 금융기관은 제재 위반 없어
민간업체들 탐욕으로 책임 전가도
석탄 운반한 선박 4척 입항 금지
국내 수입업체들이 북한산 석탄과 선철 3만5,000여톤(66억원 상당)을 원산지를 속이거나 원산지 증명이 필요없는 ‘세미코크스’로 거짓 신고한 뒤 불법 반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국제 사회의 제재로 북한산 석탄 가격이 하락하자 매매 차익을 노리고 범행을 저질렀다. 지난해 10월 첩보를 입수하고 사건 조사에 나선 관세청이 올 2월 피의자 자백도 받지 못한 채 구속 의견을 냈다 검찰의 보강 수사 지휘를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사전에 금수 품목의 반입을 차단하지 못한 관세청은 이후 조사 과정도 허술했던 셈이다.
10일 관세청에 따르면 석탄 수입 업체를 운영하는 A(45)씨와 B(56)씨, 화물운송중개업체를 운영하는 C(45)씨 등은 지난해 4~10월 총 7차례에 걸쳐 북한산 석탄 3만3,000톤을 러시아산으로 위조해 국내로 반입하고, 북한산 선철 2,000톤을 원산지 증명이 필요 없는 세미코크스로 거짓 신고해 들여왔다. 관세청은 이들을 관세법 상 부정수입 및 밀수입, 형법 상 사문서위조 혐의로 검찰에 넘길 예정이다.
이들은 북한에서 반출된 화물을 러시아 소재 항구 3곳에서 인도 받았고, 이를 다른 배에 환적한 뒤 국내로 반입했다. 이 과정에서 스카이엔젤, 리치글로리 등 북한산 석탄ㆍ선철을 실은 7척의 선박이 당진ㆍ포항 등 5개항으로 들어와 화물을 하역한 뒤 출항했다. 당국은 7척 중 지난해 8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산 석탄 수출 금지를 결의(2371호)한 뒤 입항한 4척에 대해선 조사 결과를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에 보고하기로 했다. 또 이와 별개로 국내에서도 관계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이들 4척에 대한 입항 금지 조치를 취하기로 결론 내렸다. 나머지 3척에 대해서도 국내 입항 금지 여부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수입업자들은 북한과 직접적인 금융거래를 하진 않았다. 이들은 중개무역의 수수료로 북한산 석탄과 선철을 현물로 받은 뒤 이를 국내 중간 납품업체에 팔아 넘겼다. 당국은 거래 과정에 연루된 국내 금융기관이 북한과 직접 거래를 한 것은 아니어서 국제 사회나 미국의 제재를 받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임상범 외교부 원자력비확산 외교기획관은 “국내에서 물건을 사들인 업체가 시중은행을 통해 피의자들에게 신용장 방식으로 수입대금을 지급하긴 했지만 북한과의 직접 거래가 아닌 국내 업체끼리 거래여서 안보리 제재 대상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북한산 석탄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남동발전도 기소 의견 송치 대상에서 제외됐다. 북한산인 줄 모른 만큼 선의의 제3자라는 게 관세청의 설명이다.
수사 결과는 나왔지만 늑장 수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수사가 10개월이나 소요된 것에 대해 관세청 관계자는 “피의자들이 혐의를 부인하거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는 등 수사를 방해했다”며 궁색하게 변명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2월 해당 화물이 북한에서 러시아로 넘어간 경위를 파악해 피의자들을 구속 수사해야 한다는 의견을 검찰에 전달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검찰은 북한산 화물의 이동 경로(반출국→경유국→반입국)가 정확하게 입증되지 않은 점을 들어 보강 수사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의자들은 북한에서 러시아로 화물을 받은 것은 맞지만 이를 국내에 반입하지 않고 중국 등 제3국에 팔았다고 주장했다. 관세청은 결국 수사가 시작된 지 9개월 만인 지난달에야 피의자 자백을 받아 국내 불법 반입 사실을 파악했다. 민간 수입업자들의 탐욕과 당국의 부실한 국경 관리, 늑장 수사 등으로 북한산 금수품이 국내로 유유히 반입되고 이러한 사실이 확인되는 데에 10개월이나 걸린 셈이다. 대전=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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