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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스토리] 여름의 별미, 콩국수의 성지를 찾아서

입력
2018.08.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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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글동글한 백태. 두부류와 메주의 재료일 뿐 아니라 여름의 별미 콩국물의 재료도 되는 소중한 몸이다. 콩은 덜 익으면 날 내가 나고, 더 익으면 메주 냄새가 난다. 일정한 크기로 골라 삶아야 균일한 맛을 낼 수 있다. 강태훈 포토그래퍼
동글동글한 백태. 두부류와 메주의 재료일 뿐 아니라 여름의 별미 콩국물의 재료도 되는 소중한 몸이다. 콩은 덜 익으면 날 내가 나고, 더 익으면 메주 냄새가 난다. 일정한 크기로 골라 삶아야 균일한 맛을 낼 수 있다. 강태훈 포토그래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청계천 4가 어느 건물 어두운 계단을 올라갔다. ‘부드럽고! 고소한! 콩국수’ 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적힌 현수막이 시퍼렇게 걸려 있다. 작은 글씨로 적어둔 “한정 판매로 조기 품절될 수 있습니다” 문구가 더 가슴을 졸이게 한다. 그 아래엔 영업시간이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반까지라는 안내문도 적혀 있다. ‘배짱 식당’이라고 고까워 해야 할지, 성지라고 해야 할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까지도 나는 결정하지 못했다.

오후 2시가 넘었는데도 손님들이 가득하다. 노익장 어지간한 어르신들로만. 모두 허연 대접에 담긴 허연 것을 드시고 계신다. 면에 걸쭉하게 붙은 허연 소스가 마치 크림 소스 파스타처럼 보인다. 가벽에 가로막힌 주방에선 50년 된 부뚜막 연탄불에 부글부글 뭔가 끓고 있다.

평상시엔 콩비지 전문 식당이었다가 여름엔 콩국수 명소로 변신하는 서울 중구 주교동 ‘강산옥’이다. 10여 년 전부터 콩국수를 개시한 이 집 콩국수는 유독 맛이 좋다. 각종 포장재를 파는 가게들만 늘어선 청계천 노변 낡은 건물 2층까지 여름마다 콩국수 애호가들이 모여드는 이유다.

스파게티처럼 비벼 먹는 강산옥의 콩국수. 이해림 제공
스파게티처럼 비벼 먹는 강산옥의 콩국수. 이해림 제공

굵은 밀가루 면발의 콩국수 대접을 받으면 이런 설명을 꼭 듣게 된다. “비벼 드세요. 스파게티처럼. 숟가락으로 콩국물을 떠드시면서.” 면 두께가 중면이라 아니나 다를까 스파게티 같다. 혹자는 비벼둔 강산옥의 콩국수 사진을 보더니 대번에 “비빔 콩국수네!” 하기도 한다. 좋은 콩을 구해다가 매일 콩을 불리고 강한 연탄불 화력에 팔팔 끓여 만드는 이 집 콩국물은 콩의 진한 단백질 맛을 온전히 낸다. 질감은 꾸덕하지만 된 죽 같지 않고 유화를 잘 시킨 파스타 소스 같이 농후하다. 마치 크림처럼 가볍고, 입안을 흐르는 느낌이 유독 부드럽다. 팔이 아프도록 거품기로 휘저어 공기를 넣은 것이 비결이다. ‘휘핑 콩국물’이라 할 수 있다.

입맛에 맞춰 소금간을 보고 짜장면 비비듯 비벼 먹는데, 김치 먹을 간도 생각해야 한다. 액젓 향이 짜르르하게 혀 끝에 와 닿는 새빨간 김치는 매일 담는데, 담백하게 고소한 콩국수와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콩국수 위 고명으로 듬뿍 얹은 오이채가 아삭아삭하니 콩국물과 면의 무거운 질감을 가볍게 완충시켜준다.

양이 적어 보이지만 그래도 막상 먹기 시작하면 배가 불러 다 비우기 힘든 것이 파스타와 꼭 닮았다. 이 타이밍에 사장님은 또 한 번 설명을 들려준다. “배부르시면 면은 남기고 콩국물만 떠서 드세요.” 국수 사이에 밴 콩국물까지 꾹꾹 짜서 긁어 먹었다. 문 닫을 채비를 하는 배짱 식당에서 콩국물 페트병 하나를 사들고 나왔다. 그나마도 다 떨어지고 주인이 집에서 드시려고 따로 챙겨둔 것을 팔아주어 간신히 샀다. 콩국수의 성지다.

 콩국물? 콩물? 콩국? 

이런 콩국수가 강 너머 반포에도 있다. 서초구 반포동 센트럴시티의 ‘베테랑’이다. 전주 한옥마을에 본점을 뒀는데 본점과 같은 콩국물을 사용해 서울식 짭짤한 콩국수를 판다. 아무 고명도 없이 쫄깃한 면을 큼직하게 똬리 틀어 놓고 강산옥의 것처럼 부드럽고 크리미한 콩국물을 부어 얹는다. ‘마신다’는 행위가 불가능한 콩국물들이다. 먹어야 하는 콩국물이다.

이 집 콩국수도 유별나기가 보통이 아니다. 파주에서 햇 장단콩이 나올 때 톤 단위로 사서 건조시키고 크기 별로 선별해 진공포장해 저온창고에 보관해둔다. 크기를 구분하는 것은 콩 사이즈가 다르면 익힘 정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어서다. 덜 익은 콩은 비린내를 내고, 과하게 익은 콩은 메주 군내를 낸다. 더도 덜도 아니라 딱 떨어지는 콩국물 맛을 맞추자면 콩의 크기도 중요한 것이다.

손으로 직접 콩을 고르는 베테랑의 콩국수. 이해림 제공
손으로 직접 콩을 고르는 베테랑의 콩국수. 이해림 제공

좋은 커피를 만들 때나, 맛있는 밥을 지을 때 중요한 것이 ‘핸드 픽(hand pick)’이다. 베테랑에선 콩국물 만드는 데에도 핸드 픽을 한다. 상하거나 깨지거나 벌레 먹은 낱알을 제거해서 콩의 맛있는 맛만 남긴다. 5~20%의 콩이 이 과정에서 버려진다. 불리고 삶고, 불순한 맛을 내는 껍질도 남김 없이 제거한 후에야 기계식 맷돌로 콩국물을 갈아낸다. 끝이 아니다. 대형 거품기로 휘저어 미세한 거품을 콩국물에 집어 넣어야 끝난다. 고운 빙수 얼음을 섞어 희석시키는 것도 요령이다. ‘공기 반, 콩 반’인 베테랑식 휘핑 콩국물이 만들어진다. 전주에서 만든 콩국물은 서울 지점으로 보낸다. 고속터미널에 위치한 이유다. 당일 소진이 원칙. 본점에선 전주식으로 콩가루와 설탕을 쳐서 내고, 서울 지점들에선 둘을 생략하고 원래의 소금간만으로 서울식 변형 콩국수를 낸다. 서울 입맛엔 충분하다. 콩 외엔 아무 것도 넣지 않는 이 식당의 콩국물은 잣을 안 넣었는데도 잣 같이 톡 튀는 싱그러운 고소한 맛이 난다.

참, 여기선 콩국수용 콩국물을 콩국물이라고 안 하고 ‘콩물’이라고 한다. 전라도식이다. 면을 넣어 먹고 설탕을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부어 달달한 맛을 가미한다. 겉보리나 메밀껍질로 색을 낸 밀가루 소바를 넣어 먹기도 한다. 경상도에서는 이걸 또 ‘콩국’이라고 한다. 단 맛은 내지 않고 짭짤하게 간하는 대신에 채친 우뭇가사리를 넣어 먹는 방식도 갖고 있다. 콩은 다 같이 삶고 갈아 먹는데 이름은 제 각각이다.

 땅콩과 깨를 첨가해 고소함 배가 

콩국수에 콩만 들어가라는 법도 없다. 중구 충무로5가 인쇄소와 오토바이 상점이 즐비한 좁은 뒷골목의 ‘만나손칼국수’에선 껍질 깐 땅콩과 깨를 첨가해 고소함을 배가시킨다. 이곳 역시 전문은 칼국수인데, 여름이 되면 콩국수를 계절 메뉴로 올린다. 올해 콩국수도 5월부터 시작했다. 사장님 가족이 고향 경상도에서 농사지은 콩을 수확하자마자 콩국수를 시작한다. 한 번에 다 받아 두지 않고 저온에 보관해뒀다가, 그때그때 서울로 받아 콩국물을 만든다.

영업 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오후 늦게 가면 이미 배추를 손질하며 문 닫을 채비를 하고 있다. 저녁 영업을 하지 않는 것은 주변 상권이 일찍 퇴근하는 이유도 있지만 새벽 같이 불을 켜고 면을 만들고 육수를 내고 김치를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콩국수의 면도 매일 아침 만든다.

땅콩과 깨로 고소함을 더한 만나손칼국수의 콩국수. 이해림 객원기자
땅콩과 깨로 고소함을 더한 만나손칼국수의 콩국수. 이해림 객원기자

노란 기운이 도는 면에 진한 콩국물을 부어 내고 별다른 고명을 두지 않는 것은 베테랑과 같다. 얼음 몇 알을 띄워주는 것이 차이다. 맛은 크게 다르다. 면을 들어올리기가 둔중하게 느껴질 정도로 무거운 콩국물에선 진한 고소함이 참기름 못지 않게 배겨난다. 땅콩의 건조한 고소함과 깨의 달달한 고소함이 콩의 고소함과 진득하게 어우러진다. 소금을 듬뿍 쳐 짠 맛이 고소한 맛을 만나 시너지를 이루는 지점까지 간을 보고 면을 삼키기 시작하면 얼음이 슬슬 녹으며 뒤로 갈수록 먹기 편한 콩국수가 된다.

마늘 향이 강렬한 이 집의 겉절이 김치는 명물 중 명물인데, 사시사철 널 뛰는 배추 가격을 감수하고 매일 한 망씩 먹기 좋게 칼로 쓱쓱 쳐내 만드는 것이다. 진하고 고급스러운 국물맛의 이 집 칼국수와도 잘 어우러지지만 콩국수와도 조합이 잘 맞는다.

이외에도 여름철 콩국수로 이름을 날리는 식당이야 많다. 콩국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식당은 단연 서소문 ‘진주회관’과 여의도 ‘진주집’. 두부에 콩비지, 청국장까지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콩 요리 전문점 ‘황금콩밭’, ‘사계진미’ 같은 곳들도 있고 최근엔 외식 기업 월향에서 ‘두부’라는 상호로 출사표를 던지기도 했다. ‘콩빠두’처럼 콩국물에 두부를 조합시킨 ‘하드코어’ 콩 요리도 유명하다.

업체별 콩국물 질감의 차이. 위는 베테랑의 크림 같은 콩물, 가운데 줄 왼쪽부터 목포 유달콩물의 노란 콩국물, 이두부야 서울이촌점의 묵직한 서리태 콩국물과 백태 콩국물, 아래는 목포 유달콩물의 서리태 콩물. 질감이 천차만별이다. 강태훈 포토그래퍼
업체별 콩국물 질감의 차이. 위는 베테랑의 크림 같은 콩물, 가운데 줄 왼쪽부터 목포 유달콩물의 노란 콩국물, 이두부야 서울이촌점의 묵직한 서리태 콩국물과 백태 콩국물, 아래는 목포 유달콩물의 서리태 콩물. 질감이 천차만별이다. 강태훈 포토그래퍼

 콩물, 어디가 맛있을까 

역대급 폭염에 집 안에서 8시간 이상 콩을 불리고 김 내며 삶고 열 나는 블렌더에 갈아 가정식 콩국물을 만든다는 것은 냉방 낭비를 불러오며, 나아가 건강을 위협하는 일이다. 하여 우유나 두유에 견과류와 두부를 갈아 만드는 ‘야매 콩국물’에 만족하는 것도 그럭저럭한 대안이 된다. 그러나 그 위조된 맛에 아쉬움을 느꼈던 합리적 홈쿡(home cook)들은 차라리 전문가에게 ‘콩국수 가사노동’을 외주 주기도 한다. ‘이두부야’ ‘아빠맘두부’ 같은 곳에서 콩국물을 사다가 가정식 콩국수를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다. 오뉴월 초여름부터 MBC 예능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개그우먼 이영자가 다이어트용으로(?) 콸콸 마시며 진작에 유명해진 이두부야 서울이촌점의 서리태 콩물은 잣을 함께 갈아 넣어 달콤하고 화려한 맛의 미숫가루나 선식 못지 않게 입맛 당기는 간식도 된다.

공기 함유량에 따라 질감이 다르고, 백태 또는 서리태로 나뉘는 주재료, 잣과 땅콩, 깨 등 부재료 배합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달라지는 콩국물이지만 모두가 진득한 콩국물이라는 지향을 갖고 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전남 목포의 ‘유달콩물’은 그런 면에서 확실히 차별되는 각별한 장르다. 질감은 훨씬 묽지만 맛은 진하기 그지 없는 콩물로 전국적인 명성을 갖고 있다. 콩물은 물로 희석할 때 아주 적은 비율 차이로도 농후한 상태에서 묽은 상태로 돌변하는 성질을 갖고 있는데, 유달콩물은 그 묽은 물성이 되는 경계치에서 고소하고 진한 맛을 최대한으로 유지한다.

최악으로 기억될 뜨거운 여름은 여전히 긴 꼬리를 남기고 있다. 열대야에 시달리고 컨디션도 저하된 우리에게 필요한 마지막 보양식은 뜨끈한 삼계탕 대신 시원하게 식힌 콩국수 한 그릇일지 모른다. 은은하게 채워주고 잡아 이끄는 콩국수는 아무튼 부담스러울 일도 물리는 일도 없는 여름만의 별미지 않은가. 남은 더위, 콩국수 한 그릇으로 시원한 끝마무리 하시라.

이해림 객원기자(herimthefoodwriter@gmail.com)

강태훈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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