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앞으로 3년 동안 180조원을 투자하고 4만명을 직접 채용하겠다고 8일 발표한 경제 활성화ㆍ일자리 창출 방안에서 구체적 사업별 투자 금액은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 될 4대 미래 성장사업을 ▦인공지능(AI) ▦5세대(5G) 통신 ▦바이오 ▦반도체 중심의 자동차 전기장치(전장)부품으로 꼽으며, 이 분야에는 25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이 매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시설투자에 사용하는 돈은 지난해(43조4,000억원)를 제외하면 대게 22조~25조원이다. 현재의 삼성을 지탱하는 핵심 사업 부문의 투자 금액만큼을 미래 4대 성장산업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의지와 함께 금액을 밝힐 정도로 투자 계획도 이미 구체화 단계에 와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 4대 사업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월 석방 후 한 달에 한 번 꼴로 해외 각지를 돌며 점 찍어 둔 영역들이기도 하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2010년 경영에 복귀하면서 ▦자동차용전지 ▦바이오 ▦태양광 ▦의료기기 ▦발광다이오드(LED)를 5대 신수종 사업으로 꼽은 바 있다. 이번 투자안에 담긴 4대 산업은 그로부터 8년이 지나 이재용 부회장이 독자적 경영을 구현하기 위해 공들여 준비해 제시한 삼성의 미래다.
먼저 AI는 정보기술(IT) 산업의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 기술인 만큼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역량을 강화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삼성전자에서는 미국 실리콘밸리, 영국 케임브리지, 캐나다 토론토, 러시아 모스크바에 각각 위치한 4개 연구센터와 한국 AI센터가 AI 관련 연구개발(R&D)을 맡고 있다. 올해 안으로 미국 뉴욕에 6번째 센터가 들어선다. AI분야는 구글과 아마존보다 삼성전자가 후발주자인데다,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고 있어 주도권을 잡으려면 인재영입과 R&D 확대가 중요하다. 삼성 관계자는 “AI 센터에 1,000명의 연구 인재를 확보하는 데 우선 투자를 집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후에는 매년 5억대씩 팔려나가는 스마트폰, TV 등에 탑재해 삼성의 AI를 확대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칩세트와 단말(스마트폰 등 기기), 통신장비 등을 모두 제조하고 있는 삼성에 5G 도입 역시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계기이다. KT 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25년 이후 5G 경제적 파급 효과는 연간 최소 30조원 이상으로 예상된다. 5G는 단순한 이동통신 기술을 넘어 자율주행, 사물인터넷(IoT), 로봇, 스마트시티 등 신산업을 가능케 하는 기반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삼성은 내년 3월 한국이 세계 최초 상용화 국가가 되는 것을 계기로 5G용 장비와 스마트폰, 칩세트 등에서 전 세계 선도자가 되기 위해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다. 미국 버라이즌 등 각국 최대 이동통신사와의 협력 사업도 탄력받을 것으로 보인다.
바이오산업은 이 부회장이 일찌감치 ‘제2의 반도체’로 낙점한 사업이다. 2010년 삼성서울병원 지하 실험실에서 12명으로 시작한 바이오 사업을 2011년 4월 삼성바이오로직스, 2012년 2월 삼성바이오에피스 설립으로 이어가고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의약품 위탁생산 세계 3위 기업으로 성장한 것 역시 이 부회장의 주요 성과다. 특히 바이오는 제품 하나를 개발하기 위해 통상 6, 7년 동안 2,000억원의 개발비가 필요할 정도로 장기 투자가 필요하다. 삼성은 “고령화와 만성ㆍ난치질환 증가 등으로 바이오 산업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기 때문에 적극적 투자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전장부품 투자는 삼성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기술을 자동차 부품으로 확대하는 게 골자다. 이를 통해 자율주행 시스템반도체 등에서 기술을 선도해 나갈 계획이다.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라인이 들어가 있는 경기 평택캠퍼스 1라인 옆에 2020년까지 30조원을 투입해 2라인을 신설하려는 것도 최첨단 반도체 시장에서 초격차를 유지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재계 관계자는 “총 투자 규모 180조원은 정부 한 해 예산 절반에 맞먹을 정도로 초대형 규모인 만큼 4대 신성장 부문에서 시장 선점을 위한 대형 인수합병(M&A)도 활발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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