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별이 떠났다’ 채시라
불륜ㆍ후처ㆍ혼전 임신 등
막장 요소 뒤엉킨 내용에도
웰메이드 평가 받으며 종영
“자신의 삶 찾아가는 여성 역할
드라마 끌고 가며 성취감 느껴”
배우 채시라(50)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의 혼신이 닿으면 ‘명품’ ‘웰메이드’ 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레 붙는다. 진부하거나 ‘막장’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한 소재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지난 4일 종방한 MBC 드라마 ‘이별이 떠났다’에도 채시라의 ‘능력’이 발휘됐다. 불륜은 기본이고 구시대적인 ‘후처’라는 설정에, 20대 혼전임신 등 자극적인 요소들이 뒤엉켰지만, ‘채시라 마법’은 여전했다.
7일 서울 압구정동 한 카페에서 만난 채시라에게 ‘비법’을 물었다. 그는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남다른 도전정신”에서 스스로 답을 찾았다. 채시라는 ‘이별이 떠났다’에서 3년 간 자신을 집안에 가둔 채 산 여자 서영희를 연기했다. 바람 난 남편과 장성한 아들 사이에서 존재 자체를 잃어버린 아내이자 엄마였다. “제가 여태까지 보여드렸던 연기가 아니라서 상당히 흥미로웠어요. 남들이 안 해봤던 연기를 내가 해내면 어떨까,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도전정신을 늘 추구해요.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끝냈을 때 희열과 성취감이 더 크잖아요.”
서영희를 연기하면서 채시라는 울기도 많이 울었다. 남편의 여자 세영(정혜영)과의 갈등, 아들의 여자친구 정효(조보아)의 혼전임신 등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밀도 있게 담는 일이 녹록하지 않았다. 고난을 헤쳐가며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여자를 표현해내는 것도 간단치 않은 일이었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는 역할이 오히려 채시라를 자극했다. 그는 자신이 드라마를 끌고 가는 연기를 할 때 “에너지를 더 받는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채시라는 어려운 길을 애써 택했다. 한창 주가를 올리던 스물 세 살 채시라는 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1991)를 만나 위안부 윤여옥의 삶을 강렬하게 표현했다. MBC ‘서울의 달’(1994)에선 산동네 아가씨 차영숙이 됐다. MBC ‘최승희’, KBS ‘천추태후’, JTBC ‘인수대비’ 등 타이틀 롤을 거치면서 더 깊어지고 단단해진 연기를 발현했다.
선배로서 거드름을 피울 만도 한데 채시라는 까마득한 후배 조보아를 데리고 대본을 맞춰보고 동선을 체크하는 일을 거의 매일 했다. 눈을 반짝거리며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후배에게 아낌없이 노하우를 전수했다. 조보아는 “수업료를 내야 할 것 같다”며 선배의 가르침에 감사를 표했다고. 촬영 현장에선 “그 어떤 선배가 후배를 데리고 이렇게 대사를 많이 맞춰주느냐, 보아는 좋겠다”는 말까지 들렸다.
어느덧 50대 문턱을 넘어선 채시라. 10대부터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그도 엄마이자 아내다. 배우로 살아오면서 화면이 담지 않은 세월의 굴곡을 겪었다. 삶에 어느 정도 달관할 나이라지만 배우로서 늙음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지니고 있지는 않을까. 채시라는 “(세월을) 막을 수 없으니 미련을 갖고 매달릴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에 쉽게 굴복하고 싶지 않아요. 뭐든지 즐기는 사람은 못 따라가는 것처럼 (시간에) 끌려 가는 게 아니라 데리고 가보자는 각오에요. 거부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면 현실에서 가장 최선을 다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35년 간 식지 않는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채시라는 의외의 대답을 들려줬다. “끼니를 절대 거르지 않는다”고 했다. 아무리 바쁜 촬영 현장에서도 식사를 챙긴다. 삼시세끼는 물론이고 영양제와 간식까지 골고루 섭취한다. 꾸준한 운동으로 체력을 단련하는 것도 ‘장수 스타’의 비결. “짬짬이 먹어요. 너무 배가 고프면 두유와 건과류를 갖고 다니며 먹고요. 식단관리보다는 거르지 않고 먹는 게 중요해요. 아침을 먹고는 점심과 저녁에는 무얼 먹을까 고민하는 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에요(웃음).”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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