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별장ㆍ접견실 등 실제 같아
공간이 몰입 높이고 빈틈 채워
분단 서사의 시야를 넓혀
황정민^ㆍ이성민 절묘한 호흡
'남북 브로맨스' 설득력 얻어
기주봉의 김정일 역할도 완벽
※ 여름은 극장가 최고 대목이다. 올해도 충무로 대작 4편(‘인랑’ ‘신과 함께-인과 연’ ‘공작’ ‘목격자’)이 여름 흥행 왕좌를 두고 대전을 치른다. 관객의 선택을 돕기 위해 한국일보 영화담당 기자가 매주 한 편씩 꼼꼼히 들여다보고 별점을 매긴다.
2005년 가수 이효리와 북한 무용수 조명애가 함께 찍은 통신사 휴대폰 광고를 기억하는가. 영화 ‘공작’(8일 개봉)은 이 드라마틱한 장면이 탄생하게 된 배후를 그린 작품이다. 가장 성공적인 대북 스파이였던 일명 ‘흑금성’의 공작 활동과, 1997년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주도한 북풍 공작 사건을 영화화했다.
북한 핵 개발로 긴장감이 고조된 1993년. 정보사 소령 출신으로 안기부에 스카우트된 박석영(황정민)은 북핵의 실체를 캐기 위해 북한 고위층에 잠입하라는 지령을 받는다. 중국 베이징에서 대북사업가로 위장한 박석영은 북한 외화벌이를 책임진 대외경제위 차장 리명운(이성민)에게 접근해 수년간 공작을 펼치고, 그를 통해 북한 권력층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남북 수뇌부 사이의 은밀한 거래가 포착되고, 조국에 대한 신념으로 공작 활동을 수행해 온 박석영은 갈등에 휩싸인다.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서 상영돼 갈채를 받고 돌아온 ‘공작’은 국내 관객에게도 좋은 평가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항목별로 꼼꼼하게 따져봤다.
스토리
양승준 기자(양)=7,600m 상공에서 뛰어내리는 톰 크루즈의 위험천만한 낙하(‘미션임파서블’ 시리즈)도 다니엘 크레이그가 손에 쥔 최첨단 무기의 향연(‘007’시리즈)도 없다. ‘공작’은 심리학 책 같은 첩보영화다. 불 같은 액션 대신 인물의 심리 변화에 집중해 피 튀기지 않고도 긴장감을 줄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북으로 간 정보요원 박석영과 북 경제의 실권을 쥔 리명운의 서로를 향한 공작은 그만큼 쫄깃하면서 서늘하다. 이야기는 ‘북풍 공작’이란 실화를 토대로 해 힘을 얻는다. 냉전과 종전 사이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는 남북 현실과 계속되는 국정원 논란과 맞물려 공명한다. ‘강철비’(2017) 보다 남북 긴장을 현실적으로 그렸다. 신선함은 아쉽지만. (★★★)
김표향 기자(김)=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를 과감하게 각색해 영화다운 영화로 완성했다. 이야기의 흡인력은 엄혹한 분단 현실에 기안하지만, 실제 사건의 무게감에 짓눌리지 않고 자신만의 페이스로 이야기를 끌고 간 윤종빈 감독의 연출이 그 이상의 힘으로 스크린을 압도한다. 첩보전에 어울리는 화끈한 액션은 없지만, 속내를 감춘 두 남자의 심리전이 총성이 빗발치는 전투보다 긴박하다. 이 심리전은 대립과 화해를 넘어서 피아 구분이 흐릿해진 경계 지대로 관객을 데려다 놓고, 냉전적 사고가 현실을 어떻게 교란했는지 보여준다. 대북공작과 대남공작, 기득권의 정치공작, 두 남자의 합동공작 등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는 지점들마다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지 영화는 끝없이 질문한다. 한국형 정치 드라마로 접근하면 더 흥미롭다. 분단 서사의 시야를 확장했다는 점은 또 다른 성취다. (★★★★☆)
◆ ‘공작’ 20자평과 종합 별점
★다섯 개 만점 기준, ☆는 반 개.
비주얼
양=강성국가건설이란 문구가 쓰인, 쩍 갈라진 담벼락 아래 가마솥에 불을 피우는 주민들. 영화 속 북한 영변 장마당의 모습이다. 북한 다큐멘터리 같다고 할까. 가상으로 만들어진 북한의 공간은 현실처럼 생생하다. 박석영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는 접견실은 압권. 공간이 중요한 영화에서 실제 같은 북한의 공간은 주연 못지않게 ‘열연’한다. 1993년부터 2005년까지 남북의 변화된 공간을 꼼꼼하게 스크린에 펼쳤다. 대북 첩보전의 판을 짠 최학성(조진웅)은 3구를 흩어지지 않게 몰아가는 당구를 치듯 박석영에 작전을 지시한다. 전작 ‘군도: 민란의 시대’(2014)에서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감독의 연출력은 제자리를 찾았다. (★★★☆)
김=사실적으로 재현된 시대상이 몰입감을 배가한다. 볼거리에서 여느 영화에 뒤지지 않는다. 북한 식당 고려관, 세탁소와 당구장으로 위장한 안기부 안가, 중국 내 고급호텔 등 성격을 명확하게 드러낸 각 공간들이 방대하고 복잡한 이야기의 빈 틈을 촘촘히 채운다. 박석영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대면하는, 웅장하고 광활한 비밀 별장이 특히 인상적인데,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힘 있게 장식한다. 빛과 어둠의 선명한 대비로 시대를 재구성하고, 인물에 밀착해 뒤쫓거나 앞서가면서 심리의 행로를 그려낸 카메라도 언급할 만하다. (★★★☆)
연기
양=탐색, 의심, 몇 번의 만남 그리고 의심. 황정민과 이성민은 이런 순간을 반복하며 영화에 긴장이란 옷을 입힌다. 사람 냄새 진하기로 유명한 두 배우가 오랜만에 격정을 지워 새롭다. 그래서 두 사람이 빚어낸 분단의 비극과 우정은 더 아리다. 북의 국가안전보위부 과장 역을 맡은 주지훈은 사냥개 같은 말과 행동으로 극에 리듬감을 준다. 기주봉의 김정일 위원장 대역은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몇몇을 제외하곤 대부분 인물이 소품처럼 쓰였다. 다양한 인물이 주는 드라마와 캐릭터의 재미는 약하다. (★★★)
김=배우의 연기가 영화의 품격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재료라는 걸 새삼 실감한다. 진폭 큰 감정 연기를 선보여 온 황정민은 이전과는 뉘앙스가 다른 연기로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성민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다. 냉혈한인 듯하면서도 인간미와 강인한 신념을 지닌 인물을 몇 마디 대사와 표정만으로 설득해 낸다. 지금도 쓰임새가 폭넓지만 더욱 가치 있게 쓰여야 하는 배우다. 두 배우의 절묘한 호흡 덕분에 남북의 ‘브로맨스’가 질척거리는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덧붙여 이 영화의 신스틸러는 단연 김정일 국방위원장. 기주봉의 완벽한 모사는 놀라운 체험의 감흥을 선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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