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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다시 생각하는 일광절약시간제

입력
2018.08.07 19:1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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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서울 올림픽과 함께 도입돼 온 국민이 비난했던 제도가 있다. 속칭 ‘서머타임’으로 알려져 있는 ‘일광 절약 시간제 (Daylight Saving Time)’다. 미국에서는 3월 두 번째 주 일요일 아침을 1시간 앞당겨 시작해 대낮 활동시간을 늘리게 된다. 가을의 문턱인 10월 두 번째 주 일요일에 원래대로 돌아간다. 당시 이 제도는 올림픽 기간에 미국과의 시차를 유지하기 위해 채택됐다. 뉴욕이나 워싱턴 등 미국 동부 지역 시청자들에게 골든타임인 저녁 8~10시대에 수영이나 육상 주요 경기를 중계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미국 방송사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였다. 2020년 올림픽을 개최하는 일본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서울 올림픽이 국가적 대사였고, 반드시 흑자 올림픽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국민적 반대를 누를 수 있었다.

서머타임을 곱지 않게 보았던 이유는 미국 방송사의 갑질 탓에 국민들의 생체리듬까지 깨뜨린다는 비판 때문이었다. 약소국 설움이 한몫했다. 올림픽이 끝나고 이 제도를 고집할 수 없었던 것은, 근로시간을 1시간 연장시킬 뿐이라는 주장 때문이었다. 지금도 근로시간이 OECD 회원국 중 3위로 선두권을 다투고 있지만 그때는 토요일에도 일했으므로, 우리나라의 근로시간은 세계 최장 수준이었다. 출근시간은 있어도, 집에 갈 기약이 없던 시절이라, 서머타임제가 출근시간만 1시간 앞당겼다는 비판은 맞는 말이었다.

90년대 초,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이 제도가 생활의 일부분으로 잘 작동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영국은 10월부터 4월까지는 오후 3시면 해가 지고 아침 8시에도 어둑어둑하다. 계절의 여왕인 5월부터는 새벽 3시, 4시경이면 해가 뜨고 저녁 늦게까지 훤하다. 오랜 시간을 짧은 낮 시간에 가두어져 있었던 영국인들에게는 대낮 활동시간을 1시간이라도 늘리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다. 오후 6시 정시 퇴근이 뿌리 내리고 있기 때문에 서머타임제는 퇴근 후 약 2~3 시간의 축구, 농구, 골프와 같은 야외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나는 2002년 한일 월드컵으로 한국 축구의 위상이 높아졌을 때, 프랑스에서 근무를 했다. 초등학생이던 아들은 저녁을 먹고 나면 으레 축구공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어디 가냐고 물어보면, 과거에는 끼워주지 않던 프랑스 애들이 축구 경기에 이제는 꼭 불러주기 때문에 간다는 것이다. 두어 시간을 흠뻑 땀을 흘리고 와도 여전히 해가 걸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광 절약 시간제를 도입하면, 저녁 시간을 효과적으로 보낼 수 있다. 취미ㆍ레저 활동을 늘리게 되어 소비 행태가 건전해지고, 라이프스타일이 바뀌게 된다. 궁극적으로는 삶에 대한 만족감을 높이게 될 것이다. 서울올림픽 기간에 헬스클럽, 수영장 등의 매출이 10~20% 늘었다는 연구는 내수 진작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게 한다.

올해 7월 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주 52시간 근로제가 적용되고, 2020년부터는 거의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된다. 서머타임제가 근로시간만 늘린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전 국민이 찜통더위에 시달리는 여름이라면, 조금이라도 시원할 때 일을 시작하는 것이 근무 효율도 높이고, 국가 전체적으로는 에너지를 절약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일광 절약 시간제는 전 세계 국가 중 약 3분의 1이 도입하고 있고, 특히 OECD 회원국 35개 중 31개 국가가 시행하고 있다. 선진국 표준인 셈이다. 이 대열에서 제외돼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터키, 아이슬란드 등 4곳이다. 대부분 오래 일하는 나라들이다. 일광 절약 시간제를 도입해서 주 52시간 근로제와 함께 우리 국민이 선진국 수준의 삶의 풍요로움과 행복감을 느끼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최광해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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