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구순(九旬ㆍ90세)을 넘긴 나이에 병상에서 가슴을 치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 자신들이 합의도 하지 않은 돈을 일본에게 받은 것도 모자라 그 돈으로 화해치유재단을 2년 가까이 운영해왔다는 것이다. 할머니들은 화해치유재단만 없애주면 국제적인 문제는 자신들이 나서서 해결하겠다는 생각이다.
앞서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2월 일본과 소위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한ㆍ일 위안부 합의’를 맺었다. 일본 정부로부터 10억엔을 받는 대가로 다시는 일본군 위안부 관련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소녀상도 철거하겠다는 게 합의 내용이었다. 화해치유재단은 이 합의에 따라 2016년 7월 28일 여성가족부 소관 비영리법인으로 설립됐다.
한ㆍ일 합의에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 등 위안부 피해자들의 요구는 반영되지 않았다. 대다수 피해자들은 일본이 주는 돈을 거부했다. 한ㆍ일 합의에 대해 히로카 쇼지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관은 “정의회복보다는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정치적 거래”라며 “성노예제 생존자들이 일본 정부로부터 완전하고 전적인 사과를 받을 때까지 정의 회복을 향한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는 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93세인 김복동 할머니는 암투병 중에도 병문안을 온 문재인 대통령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일본으로부터 받은) ‘10억엔 반환해주고 화해치유재단 해산해주면 그 다음은 우리가 싸우겠다’고 호소했다”고 전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는 28년간 활동했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2015년 한일 합의를 무효화하기 위해 100만여 시민이 출연해 만든 정의기억재단이 지난 7월에 통합해 만든 단체다.
할머니들이 화해치유재단 해체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이 재단이 한ㆍ일 위안부 합의의 당위성만 홍보하면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상처를 어루만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고개 끄덕이기 훈련을 시킨다든가 이게 사죄금, 배상금이다(라고 알리면서) 목적 실현을 위해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면서 “그런데도 한 달에 2,750만원에 이르는 운영비를 (일본으로부터 받은) 10억엔에서 써왔다”고 지적했다. 또한 문재인 정부가 일본에서 받은 돈은 하나도 쓰지 않고 피해자 치유에 필요한 예산은 우리 돈으로 충당하겠다고 했으니 화해치유재단은 더더욱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달 24일 일본의 10억엔을 대체할 예비비로 103억원을 편성했다.
할머니들의 요구를 간추리면 이렇다. ‘일본 정부가 2015년 한ㆍ일 합의를 내세우고 있어 우리 정부가 외교 문제를 우려해 조치를 못하고 있는 점은 이해한다. 그래서 설립부터 문제가 있었던 화해치유재단을 해체시키는 국내 조치만 해주면 국제적인 문제는 우리가 나서겠다.’ 실제로 할머니들은 고령에도 유엔과 미국 국무부 면담, 일본 항의 방문 등 국제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윤 대표는 화해치유재단 해체가 법적으로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27일 한ㆍ일 합의 2주년 때 정치적 이면 합의가 있었던 것이 드러났고, 그 다음날 문 대통령이 ‘진실과 정의, 내용과 절차 면에서도 2015년 한ㆍ일 합의는 잘못됐다. 위안부 문제 해결이 아니었다’고 선언했다”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법인이 목적 사업을 달성할 수 없을 때 해산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게 정부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신고한 사람은 240명. 2015년 한ㆍ일 합의 이후에만 20명이 사망했고 이제 생존자는 28명에 불과하다. 이들은 화해치유재단 해체로 시작해 한ㆍ일 협상을 무효화하는 기약 없는 싸움을 다시 시작하려 하고 있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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